2004년 3월 30일 월요일 날씨 : 맑음
오전 5시 30분 기상하고,
40분에 점호장 집합하여 각자 배치받은 자대를 듣는다
어젯밤에는 비가 와서,
점호장은 아직 마르지 않았지만 개의치 않는다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평소보다 30분 일찍 일어났지만,
현재의 피곤함을 이기는
중요한 발표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교육생들은 자대 배치받게 될 곳이 어디인지
기대와 걱정으로 발표를 듣는다
배속될 자대명이 먼저 불리고,
이곳으로 배속되는 교육생의 이름이 뒤를 이었다
드디어 올 것이 온 순간이다
앞으로 남은 군생활을 하게 될 곳
제15 혼성 비행단 명이 불리고,
몇 명의 이름이 호명된 뒤, 내 이름이 불렸다
본인의 자대가 어디인지 들은 교육생들은
다시 각자의 내무실로 돌아갔다
우리 내무실의 대부분은 수도권 사람들이었는데,
비행단은 15비 (성남), 10비 (수원), 8비 (원주)로
배치받기를 원했다
1순위는 역시 성남이고,
차선책으로 수원과 원주에서 복무하기를 다들 바랐다
내무실에 들어와서, 각자 받은 자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8비 (원주), 10비 (수원), 25전대 (청주),
166전대, 예천, 7전대, 정통대대, 30단,
공사
모두 다양한 곳으로 배치가 되었다
우리 내무실에선 166 전대에 2명이
배속되었고, 나머지는 모두 한 명씩 배치되었다
기술학교에서의 인연은 여기까지이며,
특별히 약속하지 않는 이상
전역하고 사회에서 우연히 만나야 하는 사이가 되었다
당시 내무실 동기의 별명을 적어 보면,
어니스트, 두꺼비, 할배, 파리,
비실이, 양씨, 유치원, 허씨
그 외의 2명이 더 있었고, 별명 없이 실명으로 불렀다
아침 식사로 소불고기가 나왔다
아침 식사가 끝나고, 내무실로 오니
진짜로 떠나는 일만 남았다
훈련소에서 헤어질 때는 왠지 눈물도 나고 그랬는데,
그때 경험으로 이별이 익숙해진 것일까?
아니면, 이별의 아쉬움도 느끼지 못할 만큼
긴장과 기쁨이 있어서일까?
원하는 자대를 가지 못한 동기들은 침묵이고,
원하는 자대로 배속받았다고 해도
그 기쁨을 마냥 표현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진주 시외버스터미널로 출발
버스가 미리 배차되어서, 우리들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배속받은 자대에 따라 분류된 우리들은
하나의 버스에 탑승하게 되었고,
매번 걷거나 뛰던 길을 버스를 타고 여유롭게
창 밖을 보며 교육사를 떠난다
그동안 뛰고, 걷고, 눈치 보고, 동기 부여받은
이곳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 오른다
앞으로 합법적으로 이곳을 들어오려면
쉽지 않다는 것이 굳이 아쉽다면, 아쉬웠지만
젊은 날의 하나의 추억으로 남기기 위해
모든 풍경을 눈에 담고, 기억에 남기려 했다
맑은 하늘,
버스 안에 있어서 기온을 느낄 수 없으니
따스한 햇살로 인해 따뜻함이 느껴진다
창 밖은 이미 벚꽃이 만개했고,
그 사이를 버스가 지나며, 교육사 정문을 통과한다
그동안 육체적으로 심적으로 고생했던 것들이
이제는 안녕이 되고, 얼어있던 몸과 마음이 녹는 것 같다
고속도로 같이 뻥 뚫린 길을 지나고,
진주산성을 바라보며 버스는 달렸다
* 당시에 쓴 기록은 진주산성으로 썼지만,
진주산성은 없는 지명이다
진주성을 바라보았다고 썼는데,
분명 산에 있는 산성 같은 걸 봤는데
교육사에서 진주 시외버스 터미널을 갈 때,
이곳을 볼 수 없는 곳을 지나갔다
다리를 지나니 진주 산업대 앞을 지나게 되었다
지금은 진주 산업대에서
경상국립대학교 칠암캠퍼스로 이름이 바뀌었다
당시 정문엔 신입생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는데, 그 앞을 지나는
대학생들의 모습과 나를 비교하게 되었다
바라보는 시점은 변함이 없는데,
불과 두 달여 만에 군인으로 바뀐 내 모습이
화사한 봄과 반대로 처량 해 보였다
곧 진주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을 하고
우리는 버스를 타기 위해 하차했다
사실 진주역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기차가 아닌 버스로 이동할 줄은 몰랐다
도착한 시간을 보니 오전 9시 30분
어제의 비로 약간 젖어있는 도로
왠지 모를 들뜬 마음에 마치 M.T.(엠티)를
가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버스 출발은 오전 9시 50분이어서
약간의 시간이 남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육군 상병이 모자에
무슨 날개 달린 장식까지 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멋 부린 것 같은데,
전투모에 저런 장식이라니 뭔가 했다
휴가를 나온 것인지,
복귀를 하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여자친구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저 사람이 우리들을 보면,
앞으로 고생길이 보인다고 생각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인솔 교관은 10분 동안 음료수 사 마시고,
화장실 갈 사람은 가라고 안내를 했다
이때, 당시엔 1,000원이었던
아몬드 초콜릿을 1개 사고, 소방 특기인
동기와 같이 사 먹었다
또 함께 올라오는 동기에게 2개를 나눠줬다
지금은 없는 음료수인데, 2% 복숭아 맛을 사서
함께 먹고 마셨는데, 음료수가 800원이었다
운이 좋은 것인지 모르지만,
원래는 보통 버스를 타야 하는데, 우등 버스로 바뀌었다
업그레이드가 된 셈이다
옆에 동기는 그 사이 신문을 사서, 읽어 보고는
내게도 신문 읽기를 권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동기들은
신문을 사서 버스에 탑승하기 시작했다
우리를 인솔했던 교관은 강릉으로 배치받는
동기생들을 보내기 위해 대전까지 인솔하고,
우리 버스에 탑승하진 않았다
누군가의 지시 없이 눈치 볼 것 없이
자유롭게 있던 때가 언제인가
좋기도 하면서, 어색한 마음이다
버스는 오전 9시 50분 출발하여,
오후 1시 30분 목적지 도착으로 예정되었다
버스가 출발하면, 약 3시간 40분 정도 뒤,
서울에 도착한다
중간에 1시간 정도 버스에서 잠을 자고,
버스 밖 풍경을 바라보니,
그냥 버스를 타고 창 밖의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지루하지 않았다
오전 11시 45분
신탄진 휴게소에 도착을 하자마자
화장실을 간 것이 아니라
공중전화로 달려갔다
1541 콜렉트콜을 사용해서,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통화량이 많아서 안된다는 메시지만
반복해서 나오길래 먼저 화장실을 다녀온 뒤,
다른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시도해 보니,
드디어 전화 통화가 되었다
약 두 달 만에 듣는 목소리인데.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자대 배치받은 소식을 전달드린 뒤,
간단하게 통화를 마친 뒤
버스가 떠나기 전
칙촉 1개 + 핫 브레이크 1개
시행착오가 있었다면,
이게 점심 식사였다
그것도 모르고 옆에 동기에게 칙촉 2개를
나눠줬는데, 보답으로 프렌치 카페 커피
2모금을 마실 수 있었지만
저녁때까지 버티기엔 턱없이 부족한 식사였다
제15 혼성 비행단에 도착
2013년부터 부대명이 제15 특수임무비행단으로
바뀌었다고 했지만,
당시엔 제15 혼성 비행단이었고
줄여서 15비로 불렀다
오후 1시 30분
성남 종합 버스 터미널에 도착을 했고,
부모님이 근처 살았던 동기는
마중 나온 부모님을 만날 수 있었다
공식적인 면회가 아니기 때문에,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진 못했다
호송관이 이미 우리를 인솔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고, 우리들은 더플백을 맨체
부대에서 나온 버스에 탑승한다
이동하는 버스 너머로 보이는 자동차들의
번호판에 서울이라고 적힌 글자를 보니
왠지 반가움이 생겼다
10분 정도 이동하니, 면접 볼 때 왔었던
제15 혼성 비행단에 도착을 했다
다시 봐도 낡아 보이는 건물들
그래도 재방문이라서 익숙한 풍경
이곳이 이제 남은 2년 이상의
군생활을 하게 될 자대였다
공군 이야기 시즌 1을 마치며
공군 이야기는 2004년 1월,
입대하고, 특기 학교 (기술학교/군수학교)를 가고,
자대 배치받으며 생활한 내용을 기술하기 위해
작성했던 글이었다
기술학교 당시 내무반에서 이 모든 것을
기록하기 위해 쉴 새 없이
수양록의 남는 곳에 기록하는 걸 보며,
동기들은 작가 선생이라는 말까지 붙여줬다
나중에 전역하고 이 글을 잘 써서,
출판까지 하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는데
전역하고 거의 12년이 지나서야 처음 글을 쓰게 되었다
훈련소에서 기술학교까지 있었던 일을
가능하면 읽기 쉽고, 빠르게 쓰고자 했으나
쉽지 않았고, 5년이 지나서야 완결을 냈다
다행히 훈련소와 기술학교 시절에는
수양록의 남는 곳에 기록을 하여서,
날씨는 물론 그때 있던 일까지 알 수 있으나
자대 와서는 이등병 생활을 거치며,
뭔가를 여유롭게 쓸 시간이 없었다
일부 기록과 기억만이 남아있는 자대 편은
언제 쓰게 될지 모르겠지만
글을 쓰는 동안 다음 화를 짧은 기간에
쓰지 못하다 보니, 연속성이 떨어진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작성하는 그 순간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그 당시로 돌아간 것 같은 마음이었다
겪어 본 사람만 아는 그 순간을
다른 사람과 나누며,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고,
비록 십수 년이 지난 일이지만,
지금이라도 공군에 입대하는 사람들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글을 쓰게 되었다
전역자들에게는 추억이 되고,
입대 예정자들에게는 정보가 되었으면 한다
글들을 조금 더 재밌게 썼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과 조금 더 도움이 되고,
추억이 살아나도록 디테일한 모습을
설명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래도 계획했던 훈련소와 기술학교의
생활을 마무리했다는데 후련함이 있다
공군 A-604기,
2004년 1월부터 전역 때까지 수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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