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이야기 54] 기술학교에서 마지막 일요일, 응급 수진 다녀오다

2004년 3월 28일 (일) 날씨 : 맑음

기회는 지나고 나면 잡을 수 없다

고대 그리스 신화의 신 중,

기회의 신인 카이로스의 그림을 보면

앞머리는 무성하지만, 뒷머리는 대머리다

즉, 기회가 올 때 잡을 수 있지만 지나고 나면

잡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처럼 지금의 시간이 이병으로써 가장 편하게

누릴 수 있는 시간이지만, 현재의 자유보다

더욱더 많은 것을 바라고 있기 때문에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게 된다

더 누리고 싶은 자유라고 해 봐야

지긋지긋하다고 생각되는 이곳을 벗어나고,

조교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BX에서 먹거리를 사 먹는다거나

전화를 집에 할 수 있거나

그런 것들을 바라게 되다 보면,

현재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잊게 된다

자대 가면, 이병이 어디 이렇게 자유롭게

내무실에서 웃을 수 있겠는가?

현재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100% 만족이 없는 상태에서 그리고 아직

정해지지 않은 미래의 불안감을 느끼며

이곳에서 마지막 일요일을 맞이한다

일과가 없는 일요일이다 보니,

앞으로의 미래와 몸이 아픈 것이 걱정이다

종교 참석은 자유롭지만, 교회가 조금 더 혜택이

좋았다고 생각을 한다

간식은 3개 종교 모두 같은 초코파이 2개와 콜라 1캔이지만

그 외 부수적인 행사는 교회가 많다

수요 예배도 있어서, 내무실을 벗어날 수 있고

CCM (복음송) 대회에 나가기만 하면 등수에 상관없이

과자를 비롯한 군것질 거리를 상품으로 받아 올 수 있다

개인전이 아니라 단체로 나가기 때문에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는 관계없다

일단 나가면 된다

타 종교에는 이런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오늘 날씨는 정말 좋았다

벚꽃은 절정이고, 밥을 먹기 위해 식당을 할 때

흩날리는 벚꽃 잎들을 보니,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졸업식 풍경과도 비슷한 느낌이다

뭔가 오타쿠 같은 표현이긴 하지만,

벚꽃의 시각적 효과를 가장 잘 나타낸 건

아무래도 애니메이션이 현실보다 좋은 것 같다

오전 8시 55분, CCM 참가자들을 부른다

총 4개의 팀이 나왔고, 2층 중앙 복도에 모였다

참가팀에게 과자 박스를 상품으로 준 것인데,

총 4개의 박스 중 1박스는 당직이나 근무자에게 주고

남은 3개 박스를 나눴다

그 안엔 산도, 화이트 하임, 초코하임, 오뜨, 제크,

하비스트, 사루비아, 美 in Black, 와플 등이 들어 있었다

지금도 판매되는 과자도 있고, 볼 수 없는

과자들도 들어있었다

내무실로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여서

이 자리에서 먹어야 했는데,

그중 같은 동기가 과자들을 몇 개를 챙겨 내무실에 나누어 주었다

문제는 금요일부터 배가 슬슬 아프더니,

설사가 난다는 것이다

먹어야 사는데, 먹자니 배 아프고, 안 먹자니 문제다

일단 출발하기로 했으므로, 말년 병장의 조교가

인솔하며 교회로 향했다

아스팔트 도로를 잘 걸어가다가

갑자기 조교가 좌우로 밀착을 시켜서

일단 좌우로 밀착해 보니,

사단장 차량이 지나가고 있었다

뒤이어 다른 특기 학교에서 오는 버스가 지나간다

이전에도 이야기했지만, 기술학교는 거리가 애매해서

항상 걸어 다녀야 했다

이 길을 걸어서 가는 것도 좋지만, 차를 타고 가면

또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이곳을 나가면, 다시는 이 길을 걷거나 차를 타고

돌아다닐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몸 상태를 보니

아무래도 응급 수진을 가야 할 것 같았다

저녁 예배

기술학교에서 보내는 마지막 일요일

저녁 예배 때, CCM 가수가 온다고 했다

그룹 명은 '하늘 풍경'

사회에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지만,

군대에 오면 탑 가수급 인기를 체험하게 된다

4인조 가수인데,

한 명은 김포 출신, 다른 한명은 인천 출신이라고 하고

일산에서 온 다른 멤버는 교육생들이 수군거리길

황수정 아나운서 또는 혼성 그룹 샾의 멤버 중 한 명인

서지영 닮지 않았냐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사진을 찍은 것도 없고, 오직 글로 기록해 놓아서

맞다 틀리다 할 수는 없지만, 이곳에서는

다 예뻐 보이는 것 같다

예배 후, 훈련소 내무실 동기가 초코파이를 나눠 줬다

원래는 2개가 정량인데, 마지막 종교 참석이라고

줄 수 있는 한 많이 줬다

얼마나 많이 가져왔냐면, 내무실 인원이 7명 정도 되는데

개인당 기본 5개는 먹고 많게는 6개까지도 먹었다

초코파이를 내무실로 가지고 오는 것은 금지였기 때문에

교회에서 먹지 않은 초코파이는 밴딩 사이에 숨겨서

가져와야 했다

배탈이 나서, 다른 동기들보다

많이 먹지는 못한 것이 아쉬웠다

돌아오는 길,

마지막 종교참석에 들떠서일까?

우리들이 평소보다 떠들면서 복귀했다고 생각했는지

조교는 20여 분간 점호장에서 굴리다 내무실로 복귀시켰다

이후 각자 맡은 구역에서 청소를 한다

화장실 청소를 하게 되었는데, 이때 가장 쫄리는 건

변기 커버를 열었을 때, 뭔가 있느냐 없느냐다

가끔 뭔가 있을 때 드는 생각은

미친놈이 쌌으면, 물을 내려야지

그냥 나가는 건 무슨 심뽀인지 모르겠다

저녁때, 점호가 끝난 뒤에 응급 수진을 신청했다

조교들이 종교 참석을 갔을 때, 수진 희망자를 불렀는데

그 때갔다면, 점호가 끝난 오후 9시가 넘어서

수진을 가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이제 종합 평가도 끝났겠다

수진 간다고 불이익도 없으므로, 일단 살고 봐야겠다는

생각에 응급 수진을 신청했다

당직 사관이 자신의 차를 이용해서 항의전대로

데려다주었다

입대하고 처음으로 걸어 다녔던 길을

차를 타고, 온 것이다

항의전대

이곳은 그야말로 병동이다

낯선 곳, 게다가 왠지 믿을 수 없는 의료 서비스

민간인이 아닌 군인으로서 겪는 고통 등이 더해지니

평소 아플 때 보다 더 아픈 것 같다

환자로써 부사관 후보생도 와 있었고,

여하사 후보생도 장염으로 이곳에 왔다

내 바로 앞의 장병은 이질인지 장염인지

진단을 받고 있었는데, 군의관을 보니

정신과 담당의사였다

군대에서 배 아프다면, 소화제나 다른 약을 주는 게 아니라

빨간 약을 발라 준다는 레전드 일화가 사실일 수 있겠다고

확신이 드는 순간이었다

현재 내가 먹는 약은 감기약+항생제였다

군화 독이 있어서, 같이 먹고 있었는데

군화독에 쓰는 항생제는 식전에 먹으며,

하루에 두 번 먹는 것이라 했는데,

총 세 번을 먹었으니, 횟수도 안 지켰고

약도 과다하게 먹은 것이다

설사에서 끝났기에 망정이지,

더 먹었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를 일이었다

설사에 필요한 약을 처방해 주었고,

방문한 김에 발 상태도 점검받으니

건식 무좀도 보인다며, 연고 하나를 주었다

처방전을 쓰기 위해 복도에서 기다리는데,

이름표에 대문자 I로 시작하는

1대대 훈련병 중 10명이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입대한 지 일주일 남짓 되는 훈련병들이다

감기 때문인지 얼굴이 벌건채 상기되어 있는 모습이다

밤이 되니, 더욱 불안해진 심정이 얼굴로 표현되어서인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훈련병도 있었다

모두 표정이 어둡고, 머리는 삭발한 채 긴장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펜을 빌리기 위해 더플백을 싸고 온 1대대 훈련병에게

펜이 있냐고 물어보니, 고개만 가로 저을 뿐이었다

머리가 조금 더 긴 것으로 보아

유급이 되었던 훈련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펜이 있어야 작성할 수 있어서, 다른 훈련병에게

펜을 물어 보니,

"없습니다"

라고 하며, 정자세로 대답했다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있으니, 훈련병이 볼 때

자기보다 한참 높아 보이긴 할 시기다

결국 당직 사관이 펜을 빌려줘서 작성했고,

당직 사관은 훈련병을 진찰하는 동안

기다리기 지루했는지

담당병사에게 빨리 약 주라고 재촉해서,

약을 먼저 받아왔다

원래 순서대로라면, 훈련병들을 모두 진찰하고

그 이후에 내 차례인데, 먼저 진찰을 받고

약을 받아 온 셈이다

다시 차를 타고 돌아오니,

당직 사관은 다음부터 미리미리 다니라고 하며,

응급 수진까지는 아니라고 얘기했다

내무실에 와 보니, 오후 10시 20분 정도였다

오후 9시 45분에 항의 전대에 도착하고,

진료받고 다시 돌아왔는데, 빠르게 끝내고 온 셈이다

당직 사관에게 세면 허락을 받은 뒤

씻고, 세면하고, 씻고, 약 바르고

그제서야 잠 자리로 들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시간이 해결할 일 밖에 남지 않았다

어디로 배치 받을지

두려움과 기대를 마음에 품으며, 잠을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