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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이야기 (A-604기)

[공군 이야기 53] 수료를 앞둔 토요일의 기술 학교

by G-Kyu 2023.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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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27일 (토) 날씨 : 맑음

 

더 이상 평가를 위한 수업은 없다

3월 30일 화요일이면 이곳을 떠나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이제 남은 건 시간이 지나는 것뿐

자대를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꿈자리도 싱숭생숭하다

꿈에서는 말이 되는 것 같지만, 깨서 생각해 보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꿈인가 하는 꿈들의 연속이다

 

사회에 있을 때의 모습이 꿈에 나오더라도,

그게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아직 휴가도 안 나갔는데, 어떻게 이 모습을 하고 있지?'

 

라는 생각이 꿈에서도 드는 것을 보니

군기가 바짝 든 건지, PTSD인지 모르겠다

 

오늘은 사단장의 방문이 있는 날이다

공군 교육사령부 사단장의 방문이 있다고 하니,

군대의 꽃인 보여주기를 할 때다

 

학과 수업생 중, 절반은 실외 학과를 진행하고

남은 절반은 실내 학과를 진행한다

 

위의 상황을 알지 모를지 모르겠지만,

사단장으로써 방문하면, 뿌듯할 수도 있겠다

 

빡빡이들이 실내/실외 학과장에서

뭔가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말이다

 

그러나 높은 사람의 부대 방문은

그 한 순간을 보여 주기 위해

청소를 시작으로 귀찮은 일이 동시에 발생된다

 

역시나 온다는 단장은 안 오고, 소위, 소령 정도만

방문을 하고 학과장을 둘러보고 갔다

 

이등병의 입장에서야 높은 계급으로 보이지만,

사단장 앞에 서면, 뛰어다니면서 심부름할 계급들이므로,

똥짬들을 위해 이 고생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허위 보고

 

말년엔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라 했던가

졸업을 앞둔 시점에 사단장 방문 예정이 생기면서,

부산스러운 분위기에서 마음에 청소를 하다 보니

교육생들의 긴장이 풀어진 것 같다

 

교육생 중 한 명이 청소하다가 넘어져서

머리가 아프다며 입실을 한 것이다

 

나중에 진상 조사를 해 보니, 교육생끼리 장난치다가

한 교육생이 다른 교육생의 턱을 팔꿈치로 쳐서,

골이 아프게 된 것이다

 

복싱하는 것도 아니고 턱을 칠 일이 있나 생각이 들지만

당시에는 이미 벌어진 일이므로 수습이 문제였다

 

문제는 수습하려다가 더 커지고,

걸려서 더 큰 문제가 된다

 

교육생끼리 장난치다가 다쳤다고 보고하면

큰일이 날까 봐 교육생은 청소하다가 넘어졌다고

조교에게 보고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상부에 뇌진탕으로 보고가 되었고,

기술학교 교장 (대령) 에게까지 보고가 올라간 것이다

 

만약, 사실대로 보고 했다면 중대장 선에서 끝났을 텐데

일과 중 다친 사건으로 되다 보니, 정식 체계대로

가장 윗선까지 보고가 된 것이다

 

뇌진탕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가 시작되었고,

같이 청소를 한 입실한 교육생의 같은 내무실 교육생

3명을 불러서 사실인지 조사를 했다

 

그 결과 장난치다가 그렇게 된 것이란 것이

들통나고, 졸지에 중대장은 허위보고 한 셈이 되었다

 

여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수양록에 조교들이

동전을 던져서 식사 순서를 정한다고 적었다

 

그 수양록을 대대장이 보게 되었고,

이 모든 상황들이 합쳐져 내리 갈굼이 시작되었다

 

밥 먹기 전에 무릎 앉아 자세로 대기하고,

밥 먹고 와서는 1시간가량 학과장 학과장 백들고

 

팔 굽혀 펴기 하고, 쪼그려 앉아 뛰고

내무실에 들어가서는 대기 자세로 있으라고 했다

 

당시엔 없는 영화지만, 류승범 주연에

수상한 고개들이란 영화에서 한 대사처럼,

 

시간이 갈수록 희망적인 곳은 군대 밖에 없다는

말에 동의할 정도로 이런 생활도 곧 끝난다는

사실에 힘든 이 상황을 버티게 된다

 

비슷한 말로는 국방부 시게는 매달아 놔도

돌아간다가 있었다

 

이렇게 정신없는 와중에 세면세치

(세수+양치)를 하고 나니,

제1 복도 끝의 창고에서 군장류를 모두 빼라고 했다

 

'굴리는 게 아직 안 끝났나?'

 

하이바(방탄 헬멧), 탄피, 배낭, 야삽, 수통 등

분위기상 이거 다 차고, 완전 군장 구보하나 했는데

다행히 군장 숫자 파악을 하기 위해서였다

 

하긴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일로 며칠 뒤

퇴소할 교육생을 굴리는 건 조교들도 귀찮은 일일 것이다

 

오후 2시 20분에 시작된 숫자 파악은

오후 5시 50분까지 했다

 

말년 토요일이라고 해서,

결코 만만한 하루를 보내는 게 아니었다

 

이 와중에 운이 좋은 교육생은 산불 근무였다

교육사에서 산불이 날 리가 있겠는가?

 

확률적으로 적지만, 만약 산불 나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세운 근무 같다

 

원래 2시간을 근무 서는데, 기합 받을 때

이 근무자들은 빠져있어서, 총 4시간을 서게 되었다

 

자대 결정

 

기술학교 분위기가 좋지 않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들의 앞 날을 이미 결정지었다

 

오늘 오후 12시,

모든 교육생의 자대가 결정되었단 소문이 있었다

 

인터넷으로 들어가서 보면 안다고 하는데,

인터넷도 못 쓰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궁금하지만 알 수 없는 상황이고,

미리 안다고 해도 원하는 자대가 아니라면

 

그것 또한 고민을 하나 더 하게 되는 것이니,

차라리 궁금증인 선에서 끝나는 게 나은 것 같다

 

회식

 

회식이라는 단어가 거창하게 들리지만,

이곳은 군대다

 

게다가 교육생 입장이다 보니, 자율도는 더 떨어진다

GTA처럼 이곳저곳을 다닐 수 있는 게 아니다

 

회식이라는 이름 아래 군것질 거리들을 내무실에서 먹는다

초등학교 생일잔치도 아니고, 20살 넘은 남자들이

약과, 빵, 음료수, 과자 등등에 열광하며 먹는다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서 유머를 찾기 위해

지금 이 상황에서만 맞는 유머를 만들며

시간을 보내는 지경이 이르렀다

 

금연을 목표로 삼은 교육생들은 금연대대

그런 거 없고 담배 피운다라고 하면 흡연대대

 

남자들끼리 있으면서도 잘생긴 사람들을

순서대로 정하면서, 제일 잘 생긴 사람은

교장이고 그 아래로 대대장,

중대장, 훈육관, 조교, 교육생, 훈련병 등으로

계급을 지어 놓고 놀며,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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