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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daily life )/생각(Thinking)

가난은 불편한게 아니라 부끄러운 이유

by G-Kyu 2023.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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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가난을 이야기할 때, 대표적인 것은 돈과 관련된 것이다.

마음이 가난하다 라고 시적인 의미로 사용할 수는 있지만, 돈이 없을 때 가난하다는 말을 자주 사용 한다.

가난하면 몸과 마음이 주눅든 상태가 유지된다. 채워져야 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같은 사람인데도 돈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자신이 느끼는 감정도 다르고, 주변에서 대접해 주는 것도 다르다.

돈이 주는 힘이 그런 것이다. 넉넉한 돈은 사람을 자신감 있게 만들고, 힘 있게 만들어 준다.

 

돈의 힘을 알고, 필요를 알지만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각종 SNS, 유튜브, 티브이, 미디어 등에서 부자들을 쉽게 접하다 보니, 왠만하면 부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 부자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13억을 가지고 있으면 부자라고 생각할까?

큰 돈이지만, 놀고먹을 수 있을 만큼 많은 돈은 아니라는 생각에 부자라는 이미지가 와닿지 않는다.

 

그러나 2023년 8월 16일 KBS 뉴스 기사 기준으로 한국의 100만 장자 (약 13억 4천만원)는

125만 4천 명으로 집계 되었다.

지난해 같은 조사에서 129만 명이었던 걸 보면 부자가 늘기는커녕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부자를 꿈꾸는 사람은 많지만 소수인 것은 그만큼 부자가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중간이라도 살아 보자는 마음에 중산층인가 생각해 보면, 한국에 중산층이 있을까 할 정도로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

이렇게 어려운 사회에서 살다 보면 장래희망으로 바라지도 않았는데, 가난한 상태가 되어 버린다.

 

노력을 안 해서 가난할까? 흥청망청 돈을 써서 가난할까? 재테크를 안 해서?

가난하게 되는 이유가 될 수도 있지만, 모든 가난한 사람이 자신의 잘못으로 가난해지지 않는다.

 

급작스러운 사고로 병원비를 지불하는 경우도 있고, 더 이상 경제 활동을 못하게 되어 빚이 생길 수도 있다.

밤잠 안 자고 했던 사업이 기울면서 빚을 지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난해 지지 않기 위해 지금도 열심히 경제활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청빈한 삶의 함정

우리나라는 유교의 영향을 받아서 청빈하게 사는 것이 옳은 모습으로 생각되었다.

그 영향이 지금까지 이어져서 어린 시절부터 돈에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하면,

어린것이 벌써부터 돈 밝힌다며 나무라는 것이 당연한 문화였다.

 

그러나 음식을 잘하려면, 음식에 관심이 있어야 하고, 공부를 잘 하려면 공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부자가 되길 바라면서, 잘 살기를 바라면서 돈에 관심 갖는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임을 알아야 한다.

 

청빈하다 :  '마음이 깨끗하고 재물에 욕심이 없어 가난하게 사는 상태에 있다' 

 

대우(對偶) 해 보면, 가난하지 않은 상태는 마음이 더럽고 재물에 욕심이 많다는 뜻이 된다.

과연 가난하지 않게 사는 것이 마음이 더럽고 재물에 욕심이 많은 상태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돈이 있으면 마음이 넉넉 해 지고, 누군가를 도울 힘도 생긴다.

물론 그 이전에 본인이 가장 좋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밝게 살아갈 원동력을 갖게 되니 말이다.

 

덮을 이불 한 장과 베개 한 개, 그리고 작은 상과 낡은 옷이 재산의 전부인 사람의 모습이 

옳은 삶이라고 한다면, 전 국민 아니 전 세계 사람들은 노숙자처럼 살아야 한다.

 

그런데 사람의 삶은 그런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재물도 다 버리고 가난하게 사는 것은

나도 힘들지만 주변도 힘들게 하는 삶이다.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불편하다

이렇게 말하면 가난도 괜찮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될 수 있다.

그런데 말처럼 가난이 부끄럽지 않고 불편한 것일까?

 

예를 들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친구들을 사귀었는데,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겠다고 한다.

 

그런데 가난해서 집은 쓰러져가고, 대접할 음식도 마땅치 않고, 집도 좁아서 아무리 정리를 해도

지저분해 보이고, 집 안에 앉을자리도 마땅치 않다.

 

이런 경우라면 선뜻 친구를 오라고 할 수 있을까?

부끄러운 감정이 전혀 없을까?

 

그렇지 않다.

집도 불편할뿐더러 이 정도면 행색도 좋지 않을 상태이니,

어디를 가도 당당하게 갈 수 없는 상태일 것이다.

 

가난해서 버스 탈 돈이 없어서 부끄러운 게 아니라 불편한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학교 친구들은 버스 타고 가는데, 혼자만 그 모습을 보며 걸어간다면 단지 불편한 것일까?

부끄러운 마음이 없겠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부끄러운 마음이 없다면 마음 안에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가난하지만 앞으로는 잘 살 것이다 라고 꿈꾸며, 

미래의 부유한 모습을 바라고 있기 때문에 잠시 잠깐 불편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만약 절망 가운데 있고, 앞으로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이나 꿈이 없다면,

희망과 꿈으로 잠시 가리워져서 가난은 불편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장막이 벗어지고,

그 근본인 수치만 남게 된다.


말장난처럼 부끄러운 게 아니라 불편한 것이라고 하기에 가난이 주는 현실은 만만치 않다.

가난한 이미지의 함정

부자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는 돈만 알고 사람 알기를 우습게 아는 것으로 표현한다.

일부 부자들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글 수는 없다.

 

부자가 되면, 그런 모습으로 비치거나 그렇게 될 까봐 가난한 삶을 추구한다면

부자의 부정적 이미지보다 더 비참한 삶을 살 수 있다.

 

가난하면 부끄러운 감정은 기본이고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을 못한다.

 

돈을 주는데 거부하거나 정말 필요한 만큼만 받고 남은 돈을 돌려주는 모습이 멋있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생활에 적용을 하면, 사람이 우스워지는 건 한순간이다.

 

이때 필요한 자세는 돈을 돈처럼 봐야 한다

돈을 돌처럼 보면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치부하는 게 아니라 잘 사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자동차가 있는데 그저 바라보기만 하고 사용하지 않으면 공간만 차지하는 철덩어리다.

그러나 자동차로써 보고, 잘 사용한다면 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바뀐다.

 

가난해야 몸과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라는 함정에서 벗어나서,

돈을 무시하지 말고 잘 사용해야 부끄러운 감정은 당연하고 불편한 미래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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