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날에 가다
2021년 8월 초, 남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노량 대교를 건너기 전
이순신 순국 공원을 잠깐 들르게 되었다
이순신은 우리 나라 역사 인물 가운데,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유명한 장군이었고
영화, 드라마 등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기에
그의 업적과 활약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격전지를 가 본 적은 없었기에 호기심이
생겼고, 이순신 순국 공원에 들르게 되었다
작정하고 일정을 보내기 위해 방문해야 할 정도로
넓은 공원이었다
8월 초, 무더위가 절정일 때라 그런지
오전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임에도 햇살은 따갑고,
바람은 습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무더운 여름이었기에
필수 요소라 생각되는 곳만 둘러 보기로 했다
공원은 잘 만들어져 있어서 산책도 가능하고,
보고, 즐길 거리가 다양했으나 일단 더웠고,
시간이 없어서 둘러 볼 수가 없었다
이순신 순국 공원 상징 조형물
이순신 장군 순국일 (1598년 11월 19일)에 맞춰 전체 높이 11.19m로
제작되었으며, 이순신 장군의 탄신 472주년인 2017년 4월 28일에 건립되었다
바닥은 판옥선이 파도를 가르며 전장을 향해 나가는 모습으로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다'는
필사즉생 필생즉사와 명조 팔사품의 하나로 전장에서 군사들을 독려하기 위해 달았던
독전기에 새겨진 글귀인 "싸움을 감독하고 사기를 복돋워준다"는 뜻의 독전과
적과 싸움에 있어 명령을 어긴 자는 처참한다는 범군임적불용명자처참을 각각 새겨 넣었다
동상은 청동주물로 노량해전 당시 판옥선 장대 위에서 적의 총탄을 맞고도
가슴을 움켜쥐고 끝까지 전장을 힘차게 지휘하고 있는 이순신 장군의 역동적인 모습과
그 뒤를 따르는 병사들의 모습을 묘사하였다
구조물은 판옥선의 돛대를 형상화하여 꼭대기에는 대장선을 의미하는 '수' 자의 깃발을 달았다
조형물은 바다를 향해 있었으며,
당시 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동상을 등지고 둘러보는 남해 바다
흐리지만 습한 날씨가 온 몸에 느껴졌고,
바다 짠내음이 있어서 여기가 바다라는 것이
다시금 느껴진다
지금은 평화로웠지만, 이순신 장군이 살아있을 당시
이 풍경은 반드시 이겨야 할 전쟁터로 보였을 것이다
어제까지 함께 있던 병사들이 죽었을 것이고,
전쟁의 패배는 곧 조선의 멸망이라는 부담감으로
승리를 위해 고민하고 싸웠을 것이다
이충무공 유적을 가다
이곳은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기리며 만들어진 곳이다
여기서 노량 해전 장소를 바라 볼 수 있는
전망대를 갈 수 있기에 들러 보기로 한다
안내판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 (사적 제232호)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은 선조 31년(1598년) 노량해전에서 충무공 이순신이 순국한 곳이다
임진왜란의 마지막 격전지였던 이곳에서 이충무공은 관음포로 도주하는 왜군을 쫓던 중 적탄에 맞고
순국하였다 그 이후 관음포 앞바다를 '이충무공이 순국한 바다'라는 뜻에서 이락파 라고도 한다
조선 순조 32년(1832)에 이순신 장군의 8세손 통제사 이항건이 왕명에 따라 충무공 이순신의 충의와
공적을 기록한 유허비를 세웠다 충무이공순신유허비는 홍문관 대제학 홍석주가 짓고 예문관 제학 이익회가 썼다
해방 후 1950년 남해 군민 7,000여 명이 헌금하여 정원과 참배로를 조성하고 1965년 박정희 대통령이
이락사와 대성운해라는 현액을 내렸다 1998년 12월 16일 충무공 이순신 순국 400주년을 맞이하여 유언비를 세우고 주변을 정비하였다
이 유적은 임진왜란의 명장 이순신의 공로와 충의가 담긴 역사 공간이다
그 옆엔 남해 관광지도가 있었는데,
후손들이 이곳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목숨 바쳐 싸운 것이 아닐까 생각 해 본다
주변은 잘 관리된 잔디와 멋진 나무들이 있었고,
무더운 날씨에 이런 풍경을 보니,
군대 시절 활주로의 향기가 느껴졌다
이런걸 PTSD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왜 힘들거나 극한의 상황을 맞이하면,
군 시절이 떠오르는지 그것도 묘하다
첨망대
한려수도를 따라 유유히 남해노량 앞바다에 이르면 관음포가 바라보이니
이곳이 삼도수군통제사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임진왜란 7년 중 노량해전에서 순국하신
곳으로 1991년 이락사 마지막 지점에 충무공이 순국한 지점을 바라볼 수 있게 첨망대를 세웠다
라고 적혀있었으며,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왕복 1km 정도 거리지만 나무로 둘러 싸여 있어
햇빛도 들지 않아, 나무의 향기를 맡으며 산 길을 걸었다
길다면 긴 시간, 짧다면 짧은 시간
산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 덧 도착을 했다
이곳에 오기 전, 입구에서 봤던 문구 그대로 쓰여있었다
이런 안내판을 보면, 초등학교 때가 떠 오른다
수학여행을 가거나 방학 때, 탐구생활에 방학 동안
무엇을 했는지 쓰기 위해 방문한 유적지나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곳에 갔을 때, 안내판을 메모지에 죽어라
적어대던 초등학교 학생의 모습이 떠 올랐다
당시엔 국민학생이라고 했는데, 조금 머리를 쓰면
카메라를 가지고 가서 안내판을 사진으로 찍었다
그래서 어딘가를 가서 안내판을 보면,
쓰거나 찍었던 기억이 떠 오른다
노량해전
노량 앞바다는 1598년 11월 19일(양 12.16) 순천 왜교성에 고립된 소서행장을 구출하기 위해서
출동한 왜장 도진의홍 등의 500여척과 이순신 제독이 주도하는 조, 명 수군 150여척이 처절한 전투를
벌인 곳이다 이순신 함대의 공격으로 죽음의 경각에 놓인 도진의홍은 막다른 골목인 줄도 모르고 관음프로 도망갔으며, 이순신 함대의 맹추격으로 크게 패하여 겨우 50여척만 빠져나와 여수 해협으로 도주를 할 수 있었다 이 전투가 끝날무렵 이순신 제독은 왜군의 조총에 맞아 숨을 거두면서 "지금 전쟁이 한창 급하다 내가 죽었다고 알리지 마라" 라는 유언을 남기며 전사하였다 이곳은 7년간에 걸친 임진왜란을 조선의 승리로 이끈 마지막 해전지요 이충무공이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한 애국충정이 깃든 곳이다
나무로 가려져 있어서 잘 보이진 않지만
눈 앞에 보이는 바다가 노량해전의 격전지이고,
이순신 장군이 순국한 곳이다
기대감이 있었을까
바다에서 있던 전투고 당연히 이 모습 이외의 것이
없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더 대단한 무엇인가가
있을 것 같은데,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며,
읽은 안내판과 그동안의 삶과 이순신 장군에 대한
생각을 함께 합쳐서 다시 보니
치열했던 전투의 그날이 느껴지는 듯했다
어릴 때는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던 것들이고,
관심이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기록해 두고 기념해 두어야 잊지 않는
중요한 수단임을 깨닫게 되었다
다시 일정을 위해 내려왔다
1598년의 11월 19일,
전투가 치열했던 그날이나 지금이나
하늘은 같고, 풍경도 그리 크게 안 바뀌었을 것이다
만약 전투에서 졌다면,
같은 자연 풍경 아래 지금의 모습은 다르게
바뀌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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