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월 25일 날씨 : 맑음
15년도 더 된 이야기를 쓸 수 있는 것은 기억력이 지나치게 좋은 것도 아니고,
의무적으로 작성해야 했던 수양록 덕분이었다
국민학교 (현재는 초등학교) 때, 방학 때 일기를 몰아 쓰면서 그때 날씨가 어땠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아서, 대충 날씨를 지어서 썼던 걸 기억을 해 보면 꾸준한 기록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전쟁 중에도 이순신 장군은 일기를 썼다
전시 상황도 아니었고, 자발적으로 쓴 일기는 아니지만
이때 작성했던 수양록이 큰 도움이 되었다
수양록 말고, 미리 준비 해 간 수첩에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적었었는데 수첩을 찾으면 또 다른 에피소드가 생각 날지도 모르겠다 그 날의 기억을 정확히 기억하는 것은 머릿속이 아니라 수첩일 것이다
오늘은 마지막 구보 (현재는 뜀걸음이라고 한다)가 있는 날이다
완전 군장 4km 구보다
이제 거의 군인화 되어서, 웬만한 거리는 그냥 그러려니 한다
오히려 새로운 곳을 가 본다는 설렘이 생기는 수준이다
입대한 지 거의 한 달 만에 교육사 후문까지 갔었다
입대 당시엔 정신없어서 주위를 둘러볼 수 없었는데, 이렇게 넓은 곳이고 잘 만든 곳이란 게 보였다
그와 동시에 병으로 입대한 내게는 관련 없는 곳이라는 생각도 든다
사관생도들이 수료할 때, 가족들과 사진 찍고, 계급장 달아주는 곳으로 쓰이니 그렇다
공군 사관생도 또는 부사관라면,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지금은 뛰면서 방탄모와 군장으로 군대 최하의 계급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언젠가 사회인이 되면 지금 뛴 이 순간을 추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때 당시로 2006년 5월은 올 것 같지 않았다
아주 까마득한 먼 미래로 보였기 때문이다
2004년 1월인데, 2006년 5월 말 이라니...
그런데 지금은 2019년이다
세월은 흐른다
이제 기억 적은 것이 없어 더 이상 수양록 기록에 의지 할 수는 없지만, 의식의 흐름대로 쓰자면 마지막 평가 때로 돌아간다
2004년 내가 입대 한 기수, A-604
교육사에 최고 계급인 단장 (계급 : 준장 (원스타)로 기억한다)이 바뀌면서,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즉, 마지막 행군을 완전군장 18km 정도 하는데 기존에는 교육사 내부를 한 바퀴 돌고 끝났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전과 다른 걸 해야 한다고 해서 우리 기수부터 시범적으로 행군 스타일이 바뀌었다
시대를 살아가려면 변화해야 산다고 하지만, 군대에서 변화라니 그냥 있는 그대로가 더 좋다 라는 생각이 든다
생각한 것은 그냥 생각으로 넣어 두어야지 굳이 실천한다면, 나비 효과가 무엇인지 확실히 느끼게 된다
바뀐 행군 내용은 교육사 밖을 나가고, 중간에 전시 상황을 재현하고, 민가가 보이는 국도를 지나 근처 산까지 갔다가 다시 교육사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하루가 꼬박 걸리고, 군장 무게만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과연 해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40km도 아니고, 훈련병에게 얼마나 빡센 걸 시키겠는가 하면서, 말년 훈련병으로써의 여유를 가지고
새로운 행군에 참여한다
힘든 일을 앞둘수록 든든히 먹어야 한다는 군대에서 맞지 않는 말일 수도 있다
든든히 먹는다고 해서 숨 쉬기 힘들 정도로 많이 먹거나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이 먹는다면,
소화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평소만큼 혹은 그보다 조금 덜 먹어야 일정을 지낼 수 있다
18km의 군장을 메고, 행군한다는 생각에 꾸역꾸역 먹었다가는 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교들도 너무 많이 먹는 걸 권하지 않았다
아침을 먹고, 군장을 싼 후 처음 입대할 때처럼 연병장에 군장을 메고 모여서,
마지막 훈련을 앞둔 훈련병들에게 주의 사항에 대해 설명했다
행군하는 방식이 예전과 달라져서 조교들도 A4용지를 보며, 코스와 일정에 대해 중간중간 파악하고 있었다
훈련병 입장으로써는 거의 6주 만에 훈련소를 나가 볼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 좋았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같은 풍경, 같은 사람들만 보다가 이제 원래 있던 사회로 나간다고 생각하니, 소풍 가는 것처럼 들뜬 기분이 있었다
입대할 때는 교육사 정문으로 들어왔는데, 교육사 후문으로 나간 후, 기지 반 바퀴를 도는 게 오전 일정이었다
그 와중에 전시 상황을 재현하며, 방독면도 쓰고, 적을 향해 사격하는 시늉도 한다
동네 어릴 때, 병정놀이 하는 생각이 날 정도였다
티브이에서 나온 특전사들의 전시 상황 훈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제 사회 물이 겨우 빠진 훈련병들이 감당하기엔 여러모로 복잡한 일정일 수도 있었고 조교들이 보기에 훈련병은 아직도 어리바리한 모습이기 때문이고, 문제가 생기면 본인들에게 책임이 돌아오니, 한껏 긴장하고 있었다
드디어 밖으로 나가다
교육사 후문 쪽을 향해 가다 보니, 버스 정류장과 관사(BOQ)가 보였다
군부대 하면, 육군처럼 부대만 있는 걸 상상했는데 큰 곳인 만큼 많은 군인들이 머물고 있으니
그에 맞게 가족들이 머물 수 있는 아파트 또한 제공되었다
군부대라고 하지 않으면, 캠퍼스 같기도 했다
정문에 비하면, 한없이 작은 후문을 지나 드디어 밖을 나왔다
하이바 (방탄 헬멧)를 쓰고, 총과 군장을 맨 영락없는 군인의 모습으로 사회에 나와서 그동안 못 봤던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높은 건물도 없고, 그렇다고 지나다니는 차량이 있는 것도 아니다 농로 같은 곳을 걸었기 때문이다
하긴 군대 주변에 건물들이 많을 리 없었다
가뜩이나 도심 지역도 아니니 말이다
그래도 아직도 이런저런 기억이 군데군데 남아있는 걸 보면, 이 풍경을 잊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얼마를 걸었을까?
전방에 노란색 연막탄이 터지고, 화생방 MOPP4 단계라고 하여, 방독면을 착용했다
연막탄에 색깔에 맞게 정해진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빨간색 연막탄이 피어오르면, 적 전투기가 출현한 걸로 가장해서 사격하는 시늉을 해야 했다
탄창도 없고, 실탄도 없으니 총을 어깨에 메는 끈이 있는데 길이를 조절하는 쇠로 된 부분과 총열 앞부분을 치면서,
소리를 내는 걸로 사격 시 나는 소리를 대체했다
민간인들이 보면, 이게 웬 난리인가 했을 것이다
500 ~ 600명 정도 되는 훈련병과 통솔하는 조교가 논길과 수로 길을 걸으며
연막탄 터뜨리고, 방독면 쓰고, 총 쏘는 시늉을 하니 말이다
이런저런 상황이 준비되었던 것 같지만, 더 이상의 기억은 없다
그저 정해진 길을 따라 걸었다
수로 길을 벗어나 국도로 나왔다
드디어 민가를 보고, 경상남도 진주의 외딴 마을을 지나가고 있었다
예전에 국토 대장정이 유행이었고,
나보다 이전 세대들이 지방에서 무전여행을 했단 이야기만 들었는데 앞의 두 가지 경우는 아니지만
마음만은 비슷한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계획한 곳도 아니고, 가고자 했던 곳도 아닌 그저 가야 하는 길을 걸으며 만난 풍경이었다
무엇인가 먹고 싶다고 사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조교의 통제 아래 앞을 보고 걸었지만
그래도 풍경은 눈에 들어왔고 오른쪽으로 보니, 진주 시내가 저 멀리 보였다
그리고 지나가는 길의 마을에는 한문으로 쓰인 비석 같은 것도 보였고, 어딜 가도 대한민국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이때의 풍경은 새로웠고, 눈에 담아두고 싶었다
다시는 오지 않을 20대 초반이고, 이 모습으로 다시 여기 오지 않을 걸 알기에 더욱 그랬다
사람들이 전역하고 나면, 부대를 향해 오줌도 안 싼다고 할 만큼 군대는 지긋지긋하고, 기억에서 지우고 싶을 만큼
진절머리 나는 곳이라고 하는데, 조교의 구타도 없고, 계급 간의 갈등을 겪고 있지 않은 훈련병 시기이기에
당시엔 힘들었지만, 대부분의 힘든 기억 속에 이런 소소한 기억들이 군대를 회상할 때,
흐린 날 가운데 그나마 맑은 기억들이 모여서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 같다
어두울 때, 촛불이 더 밝아 보이는 것과도 같은 원리 아닐까?
전자 손목시계를 차고 있었지만, 시계를 보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차피 정해 진 구간을 가야 점심 식사를 할 테니 말이다
행군하며, 왼쪽을 보니 조교가 건빵 공장이라고 장난 삼아 이야기 한 시설물이 보였다
서울랜드 가면 중앙에 있는 은색 공처럼 생긴 시설물인데, 색상은 국방색이다
훈련병이라 잘 몰랐지만, 레이더에 관련된 시설물이 아닐까 생각된다
밖에서 교육사를 바라보니, 그 풍경이 새롭다
훈련병의 모습으로 진주 어딘가를 이렇게 다닐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어쩌면 새로운 행군 방식이 내게는 생각지도 못한 추억이 되었다
점심시간, 이제 절반 왔다
점심시간이 다 되자 교육사 정문으로 도착했다
짊어지기도 무거웠던 군장을 내려놓고, 소총을 4개씩 묶어서 세워두고
휴식하고, 먹을 수 있는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이때, 처음으로 이동 배식을 했던 것 같다
식당으로 갈 수 없으니, 배식차가 교육사 정문으로 와서 배식을 했다
티브이에서 보던 것처럼 식판에 비닐봉지를 씌우고 먹지는 않았지만,
별다른 식탁이 없었던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조교들은 연신 점심 식사 후에는 산악 행군이 있으니 많이 먹지 말라는 이야기를 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삼계탕이 점심 메뉴였다
교육사 내에 있는 교회에서 나와 초코파이와 콜라를 나누어 주었다
지금 기억을 더듬어 보면, 아들을 보기 위해 온 가족도 있는 것 같았다
편지로 행군한다는 걸 알렸으니, 이 시간쯤 어디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그렇다고 별 다른 면회 시간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니, 건강히 지낸다는 소식만 알고 있다면
굳이 만나서 좋을 건 없는 것 같다
평소 식사량보다 적게 먹거나 그 수준으로 먹고, 교회에서 준 간식인 초코파이와 콜라는
그 어떤 음식보다 기억에 남았다
정말 신이 만든 음식이 아닐까 하는 정도였다
훈련병들에게 과자, 음료수 등은 국가가 허락한 마약과도 같다
식사 시간을 포함해서 1시간 정도 쉬었을까?
이제 다시 군장을 메고, 산악 행군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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