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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이야기 (A-604기)

[공군 이야기 45] 고요한 군대의 밤

by G-Kyu 2021.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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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19일 금요일 날씨 : 맑음->흐림->맑음

군대 와서 누가 엎어갈지도 모른다고 할 정도로

푹 잔게 언제인가 떠 오르지 않는다

 

항상 긴장하고, 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기상나팔 소리가 울리자마자 잠을 깨고,

 

미래의 배속지에 대한 고민을 하며 

하루를 보내고, 옆 동기들은 의지되기도 하지만

경쟁자이기도 하니, 마음 편히 수진 못한다

 

걱정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지만,

자연스럽게 걱정되고, 긴장되는 상태를

떨쳐버리는 건 말처럼 쉽지 않았다

 

이제 아침 점호 때, 달이 보이지 않는다

1월 말 입대했을 때는 오전 6시 30분도 한 밤중 같았는데

이젠 오전 6시여도 달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계절이 되었다

 

2년 3개월 3주를 근무해야 하는 이때에

8주 가까이 시간이 흐른 것이다

 

1월에서 3월이 되었고, 2년 2개월 남짓 남은 군생활

2004년 1월 입대,  2006년 5월 전역 예정을 향해 

한 걸음 한걸음 걸어가고 있었다

 

군대리아

군대리아라는 단어는 군 입대하고 들었다

초등학교 시절, 주변에 직업 군인 형이 있어서

햄버거 빵에 군용이라고 쓰인 빵을 보고,

쪄서 먹어 본 적은 있는데, 이게 정말 햄버거에 

사용될 빵인 줄은 몰랐다

 

기본 2 봉지의 빵을 나눠 주는데,

오늘만큼은 3 봉지를 먹겠다는 각오를 했다

 

같은 내무실 동기가 빵을 배식하고 있어서,

한 개만 더 달라고 부탁했는데, 이 앞에 나와 

똑같은 부탁을 하고, 가져간 녀석이 조교한테 걸려서

자기들도 혼났다는 이야기를 했다

머뭇머뭇  대다가는 문제 생길 거 같아

2 봉지는 식판에 올려 두고, 남은 1 봉지는

야상 주머니에 얼른 넣었다

 

햄버거 한 개에 패티+딸기잼+치즈+샐러드를 넣어

완전체를 만들어서 먹었다

 

재료가 부족하니 또 다른 빵 2개는

쨈+샐러드로 먹을 수밖에 없었다

 

남들은 2개씩 먹는데, 혼자 3개 먹으려니

3개를 먹었다는 만족감과 포만감은 얻었을지 모르지만

조교에게 걸릴까 봐 허겁지겁 먹었다

 

결국 식기 근무를 하던 동기들은 빵이 모자랐는지

한 소리 듣는 모습이 보였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계절이 따뜻 해 지고 있지만, 3월 중순은 추운 때가 더 많았다

오늘의 기온은 모르지만, 바람이 불고, 날씨도 오락가락하니

훨씬 춥게 느껴졌다

 

목도 조금 아프고, 몸도 쑤시는 것 같고 무거운 몸이다

 

여기서 머리 군복 입고, 군화 신고 있는다 해서

누군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사회가 안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이 세상에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존재 같다는 생각이 드니,

모든 일이 의미 없는 일처럼 보였다

 

물론 가족들에겐 의미 있는 사람이겠지만,

세상과 단절되고, 추위 속에 허드랫 사람 취급을 받으며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견디기 싫었는지 모르겠다

 

사회 소식

2004년 당시엔 철강 원자재를 수급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고철 수집 운동을 하고 있었다

이름만 고철이지, 이걸 모으는 운동까지 하는 걸 보면

그 값어치가 대단한 것이다

 

휘발유 값은 리터당 1,430원

당시엔 오른 가격이 이 수준이었다

실업률은 9.1%인데, 그중 절반이 20대다

박사 학위 실업자가 5만 명이나 된 시기였다

 

찜질방 영업은 오전 12시까지 제한하기로 되었고,

우리나라 부조금이 3만원인 시절이었다

 

변하는 군대

지금까지는 특기 학교 (기술학교, 현 군수 학교)를 마칠 즈음

배속지가 정해졌다

 

그러나 이제는 기본 군사 훈련 (훈련소)가 끝나면,

곧바로 배속지를 정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특기 학교 성적에 열심을 다 할 필요가 있을까?

훈련소의 점수만으로 배속지가 결정되면,

기술학교에서 배우는 이론과 실습은 과락을 맞지 않을 정도로

생각하고 배우면 될 일이었다

 

추후 자대 가서 보면, 기술 학교에서 배웠던 이론과 실습이

그렇게 쓸모 있어 보이진 않았기 때문이다

 

부대 환경과 작업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취업 준비를 해서 입사를 해도 다시 일을 배우는 것과

같은 원리라 생각하면 쉽다

 

적어도 2005년 7월까지는 그런 일이 일어나진 않았다

아무래도 특기 학교의 생활이 흐지부지 될 거 같아서

없앤 사항일 수도 있겠다

 

현재 받은 특기인 전력 운영병 (55310)은

발전반 / 전기반으로 나뉘는데,

웬만하면 발전반 간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실제로 그럴 확률은 높다

발전반이 전기반 보다 많은 인원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현재 47%는 방포 (방공포)나 싸이트 (격오지)라고 하고,

남은 인원은 비행단에 배속받을 것이란 소문이 있었다

 

서로 나는 어디 쓸 테니, 너는 어디 써라 라고 하면서

의미 없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같은 자대를 가지 않는 이상 서로 볼 일이 없는 동기들

지금 하는 약속들이 과연 지켜질 수 있을까?

 

우리 기수 전(602기)에는 15명의 같은 특기들이 있었고,

우리 뒷 기수(606기)는 62명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인원의 차이도 있지만, 이 중에 선임으로 만날 사람

후임으로 만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원이 많다고 해서 비행단에 많이 가는 것도 아니다

TO에 따라 배속지가 정해지니, 

100명이 있더라도, 비행단 100개에 자리가 있다면

비행단으로 가는 것이다

 

수진

기훈단 (기본 군사 훈련단 / 훈련소)에서 몸이 아파

수진을 가려면, 최대한 빨리 가야 하고 

수진 다녀오느라 필기 못한 것이나 배우지 못한 것은

남들을 통해 베껴 쓰고, 익혀야 했다

그러나 기술학교에서는 토요일 수진이 있어서,

기훈단처럼 촉박하게 수진을 다녀오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몸이 요일에 맞춰 아픈 건 아니지만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것에선 계급의 차이를 느낀다

 

훈련병일 때는 계급이 없었고,

지금은 이등병이라는 계급이 있기 때문에 달라진 

대우가 아닐까 생각해 봤다

 

잔병을 달고 살았던 것 같다

사회에선 입지 않았던 내복을 거의 매 번 입었으니 말이다

 

내복을 계속 입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겠지만,

내복이 한 벌 밖에 없고, 빨아서 입으려면

빨래를 해야 하고, 내복이 마르지 않을 때도 있고

무엇인가 몸에 추가한다는 것은

귀찮음을 동반하는 일이었다

 

웬만한 빨래는 세탁기에 넣고, 돌리던 생활에서

이제 모든 걸 손으로 빨아야 하니

그 귀찮음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병을 달고 살고, 조금씩 늘어가는 것 같지만

평생 이곳에 살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어서

지내오지 않았나 생각된다

 

간혹 포로 생활을 몇 년이고 견뎠다는 사람들을 보면

이곳보다 처우도 좋지 않았을 텐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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