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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이야기 (A-604기)

[공군 이야기 43 ] 봄비가 오는 기술학교

by G-Kyu 2021.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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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17일 수요일 날씨 : 비 -> 흐림 -> 비

3월 중순에 오는 비는 겨울비처럼 스산하지 않았다

아침부터 비가 오는 덕에 복도 점호를 해서 그런지 몰라도,

이제 더 이상 비가 춥게 느껴지진 않았다

 

지난밤, 10시 50분쯤 내무실에서 자다 말고 한 녀석이

"야, 우리 청소 구역 애들 모자라지 않냐?" 라며

잠꼬대를 해서 깬 것만 제외하면 하루의 시작이

비가 오는 것에 비해선 괜찮았다

 

사회 소식

 

아침 식사 후, 실습장에서 일과는 시작되었다

비가 오므로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위주의 실습을 하는데,

 

스산한 봄비는 아니지만, 비가 오는 날은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혹은 여유롭게 비를 즐길 수 있는 상황이 되길 바랐다

 

그러나 현실은 어제도 오늘도 앞으로도 전역 전까지

매일매일 입어야 하는 군복을 입고,

 

어둑 컴컴한 학과정에서 머리엔 들어오지 않고,

몸에 익숙하지 않은 전기 관련된 학과를 배우고,

실습해야 했다 

이런 재미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재미있는 소식은

사회 소식을 듣는 것이다

 

그중, 유럽 챔피언스 리그의 경기 결과 소식들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중간에 탈락하고,

바이에른 뮌헨과 레알 마드리드는 1 대 1로 비긴 소식

 

한국 축구 올림픽 대표팀은 오늘 이란과 축구를 한다고 했다

오후 9시 20분부터 한다고 하는데, 볼 수 없는 시간대였다

볼 수 있는 시간대라고 해도, 어차피 티브이를 볼 수 없다

일본은 바레인을 이겼다는 소식이 있었다

 

야구 소식은 MLB에서 최희섭 3할대의 타율,

국내에 있는 김병현 부상 중이고,

일본에서 뛰는 이승엽은 일본 투수 마쓰자카에서

삼진을 두 번 당했다는 소식

 

가요계는 박상민의 노래 해바라기가 유행이라고 했다

 

사회에서는 흘러가는 이야기이고, 눈과 귀를 사로잡을 정도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군대와 관련된 소식만 아니면

이 때는 이야기는 무엇이든 반가웠다

 

군대 물가 그리고 조교

 

군 입대 전부터, 군대는 사회보다 물가가 저렴하다고 알고 있었다

2004년 당시 구매할 수 있었던 품목들의 가격을 보면,

 

아이스크림 350원 (당시 사회보다 150원 쌌던 가격)

빵 400원 , 약과 400원, 소라과자 450원이었다

 

자유롭게 BX를 가서 사 먹을 순 없었지만,

단체로 먹을 걸 구매할 때, 먹을 수 있던 음식들이었다

 

 식사 때, 부식이 나오긴 했다

아이스크림이 나오기도 하고, 사과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부족하기 그지없었다

아마 마음의 허기가 가장 크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이때 아니면 먹을 수 없다는 마음과

자유가 억압되어 있다는 생각이 겹치니 말이다

 

실제로 군 입대 후, 적응하기 어려운 것은

단체로 움직이고, 처음 배우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

다그치면서 배우는 분위기다

 

머릿속으로 군대는 그런 곳이라는 걸 알지만,

막상 그 상황이 되면 거부 반응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군대는 전쟁을 대비하는 단체이므로,

명령과 복종이 정확하게 이뤄져야 한다

전쟁 시, 개인행동을 하면 부대원 전체가 위험해지고,

상관의 판단을 신뢰하지 않고, 명령을 불복종하면

그 또한 모두가 위험 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계급에 따라 주어진 역할에 맞게 행동해야 하고,

상관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상황이 익숙지 않은 것이다

 

상관에 대해 분명 더 괜찮은 방법이 있는데, 왜 이렇게 할까?

라는 의문을 가지면 본인만 피곤 해 지는 것이다

 

그래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말이 맞는지

조교들도 3주가량 함께 지내다 보니 

처음보다는 여유 있는 관계가 되었다

 

심심하면, 학교 어디 사는지, 

대학은 어디 다니는지 물어본다

 

그 이상 대화할 정도의 사이도 아니고,

하고 싶지도 않으니, 적당한 거리를 둔 관계

 

체련 취소와 종교 활동

 

수요일의 장점 중 하나는 일과 시간이 끝나기

2시간 전에 체련 시간이 있다

 

전투 체련이라고 불리는데, 

군대에서 하는 건 모두 전투라서 그럴까?

 

이 시간에 격렬하게 운동을 하지 않아도,

왠지 자유를 얻은 것 같은 생각에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그러나 동기들 말대로 저주받은 특기라서 그런가?

하필 오늘 비가 오기 때문에 체련은 취소되었다

 

그래도 종교 참석은 취소되지 않았기에

저녁을 먹은 뒤, 종교 참석을 갈 수 있었다

 

저녁때 나온 부식인 맛스타 복숭아 맛은 

사탕을 녹여서 만든 맛이었지만, 이마저도 없어서

못 먹는 시기이므로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종교 참석 때는 위문 공연팀이 오곤 했는데,

오늘은 SEM이라고 하는 CCM 팀이었다

게다가 초코파이도 주니, 종교 참석을 빠질 이유가 없었다

 

교회까지 걸어가는 게 지금 생각해 보면,

귀찮은 일이지만 교육생 생활을 하며,

그 시간에 오고 가는 시간이 일종의 탈출구였다

 

올림픽 대표팀 축구 경기가 있어서 일까

체련복을 입고 복도에서 점호를 했고

9시 32분에 끝났다

 

이렇게 시간은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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