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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이야기 (A-604기)

[공군 이야기 32 ] 눈이 오는 진주, 20대 초반의 외로움

by G-Kyu 2020.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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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6일 토요일 날씨 : 눈 -> 맑음 -> 구름 많음 반복 + 바람 많이 붐


군대는 오후 10시에 잠을 자고, 오전 6시에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만든다 머릿 속에 생각이

많지 않고, 불침번, CP근무만 없다면 8시간의 수면을 보장 해 준다

그런데 수면 시간이 보장되어 잠을 자도 푹 자는게 아니라 설잠을 잘 때가 많다 

그 증거로 꿈을 꾸는 날이 그렇지 않은 날 보다 많다는 것이다 당시 꿈 이야기를 기록한 걸 보면


군인의 모습

입대 전의 모습이 아닌 현재의 모습에 옷이 바뀌었든지, 군복, 약복을 입고 있을 때가 많다


군인의 상황

꿈 속에서 자유롭게 다닌다고 해도, 아직 군인이지, 제대 안 했지 라는 생각을 꿈에서 한다

그리고 이런 행동, 저런 말등은 군기 교육대 가는게 아닐까 하는 걱정도 한다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이 무의식 속에 자리 잡아서 그런지 꿈 조차도 군대와 관련된 꿈,

군인의 모습과 상황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눈이 오는 진주


남쪽이라 눈을 볼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는데, 훈련소에서 눈을 보고, 3월인 지금 또 눈을 봤다

당시에는 뉴스를 접할 수 없어서 몰랐는데, 2004년 3월 4일 ~ 6일 동안 1904년 기상 관측한 이래

가장 많은 눈이 중부 지방과 충정 지방 그리고 남부지방 일부에 왔다고 한다   


나중에 자대 가서 602기가 자신들이 이병일 때, 눈 많이 와서 고생했다는 얘길 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중부 지방을 비롯 해 전국에 그렇게 눈이 많이 왔는데, 진주에 이정도눈이 온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밖에 나오니, 눈이 제법 쌓였다 0.5cm가 되지 않는 것 같지만 그래도 진주에서 이 만큼의 눈이 올

것을 예상치 못했다 이와 동시에 전기반이 된다면, 이런 날씨에도 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다시 한번 전기반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졌다


이 날은 6시 50분까지 무장대대 교육생들이 모여 제설 작업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식당을 가기 위해 우의도 입어야 했다


가점, 감점표 제작


특내 기간이 시작 되었다

이제 가점표와 감점표를 통해 점수에 반영이 되고, 그 점수는 곧 자대 배치에 영향을 준다

 

실내 학과장에 도착을 한 뒤, 수업 시간 전까지 손으로 가.감점표를 그렸다

어제 받았던 표를 모델로 10개를 추가로 만들어야 했다 당시엔 불만을 갖을 생각도 못했는데,

지금 생각 하면 이왕 만들거 필요한 만큼 프린트 해서 나눠 줬으면 이 고생을 안했을 텐데, 

샘플만 주고 똑같이 그리라고 했을까?

다시 생각 해 보니, 조교들이 해야 할 일이었으므로, 본인들의 수고를 덜고자 시켰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결론이났다



가감점표를 그리며 문득 달의 모습이 떠 올랐다

훈련소에서 대보름을 맞았었는데, 어느 덧 달이 다시 커지는 걸 보니 시간이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은 피해 복구 실습을 해야 했는데, 다행히 눈이 와서 실내 학과로 대체가 되었다

만약, 피해 복구 실습을 했다면 약 80kg되는 철판 매트를 들고 나르고 조립해야 했다


시설대대이므로 전쟁 시, 활주로가 파괴되어 비행기의 이륙과 착륙이 불가능 할 때 80kg 되는 철판을

활주로의 구멍난 곳, 피해 받은 곳으로 이동 후 조립하여 그 위에 덮는 것이다

전시 상황에서는 구멍을 메우고, 다시 포장할 수 없으므로 임시로 철판을 덮어 놓는 것이다


한국 전쟁때나 이게 가능했지 요즘처럼 미사일이 정밀하게 타격되는데 활주로 복구할 시간을

적이 줄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전쟁이 나서 그런 일이 가능할까 라는 체험을 해 보고 싶진 않았다

눈이 오는 덕분에 학과 시간에 학과 공부가 아닌 안보 교육으로 대체 되었다


군대 유머


조금의 여유가 생겼던 탓일까? 

20년 넘게 살아온 사회에서는 생각치도 않았던 개그 코드가 떠 올랐다

이제 2달 남짓 지낸 군입대 기간 동안 이곳에서 생활해 보니,먼저 입대한 친구들이 휴가 나와서

왜 그렇게 군대 이야기를 했는지 이해도 되고, 군인들끼리만 웃을 수 있는 유머 코드가 생각 났다


이를테면, 친구와 둘이 걸어갈 때 2열로 나란히 걸어야 할 거 같고, 왼발 오른발을 맞춰가야 하며,

만약 서로 발이 다를 땐, 걸음 바꿔가 (군대 제식 시간에 배운다)를 해야 할 거 같다


누군가 부르면, 관등 성명을 대야 하고, 좁은 복도에서 윗 사람을 만나면 좌우로 밀착해야 할거 같다

이걸 대학에서 한다고 상상하니, 웃어야 할지 씁쓸하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식사 시, "국민의 정성 어린 이 음식을 감사히 먹겠습니다 음식물을 남기지 맙시다" 라고 외치며

식사를 해야 하고, 가방을 들 때는 왼손파지를 한 뒤 들어야 할 거 같다


사회에서 보면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생각이 드는데, 군대에서 이렇게 지내다 보니

사회인과 군인의 혼종이 만들어 진 거 같단 생각도 든다 


진주 맑음


점심 시간이 가까워오자 날이 개고 햇빛이 보였다 

햇살이 손을 덮는 걸 보며, 오늘 아침 일을 떠 올렸다 그 동안의 교육생 생활을 마친 선배들 몇명이

자대 배치를 위해 더플백과 천으로 만든 가방을 한 손에 들고, 떠난 모습이다


앞으로 몇주 뒤 내 모습이 될테지만, 자대에서 고참을 만난다는 두려움 보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기에 하루 빨리 그 날이 오길 생각했다 

자대 배치를 받아 이등병 생활을 하는게 마주하기 싫은 날이지만, 자대 배치를 받아야 휴가도 가고, 

시간이 흐르고 전역을 할 수 있기에 마음 한켠으로는 그 날이 빨리 오길 다시 한번 바랐다


1997년 도쿄 맑음이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 보진 않았지만 그 영화 제목이 떠 올랐다

맑아지는 하늘을 보며, 진주 맑음이라는 단어가 생각이 났고, 앞으로의 미래가 이렇게 맑기만을

바랐다


그저 기쁨이라면, 내일은 군대리아 (군대 햄버거)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별 다른 군것질을 할 수 없기에 밥이 아닌 다른 것을 먹는 다는 것은 큰 기쁨 중 하나였다

군대리아는 한달에 총 6번 나온다


예를들어, 첫주에는 금요일만 나오고, 두번째 주엔 금요일과 일요일에 나온다

세번째 주는 다시 금요일만 나오고, 네번째 주엔 금요일과 일요일에 나온다


먹으면 설사 한다는 교육생들도 있었지만, 나는 전혀 그런게 없었기에 기다려지는 메뉴 중 하나였다

군대 오면 사람이 단순 해 져서, 맛있는거 먹고, 잘 자고, 따뜻하기만 하면 크게 바라는 것이 없다


다음 주 월요일은 시험인데, 그 날에 대한 부담 보다는 당장 내일 먹을 수 있는 군대리아에 대한

기대가 더 컸다 


점수 반영


고만고만한 교육생들 사이에서 점수 차를 내야 하니, 시험 성적만으로는 무리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생긴 것이 가점표와 감점표 그리고 근무를 통한 점수 가점이다


오죽하면, 당직 신화, 과정 불패, 식기 만세라는 사자성어가 있었겠는가

같은 교육생활을 하면서, 자원해서 일을 하나 더 감당한다면 가점을 주고,

교육생은 자대 배치에 유리한 지점을 차지하겠다는 것이다


이제 식사 시간에 집합을 늦게 해도 감점표를 뺏기고, 빨리 모이면 가점표도 받는다

그리고 조교가 지시한 사항을 어기거나 군가등을 시켰을 때 감점표를 뺏긴다


실제로 그런 일이 시작되는 걸 보며, 

특내 기간과 가점,감점표는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저녁 먹으러 가기 전, 군가도 다시 점검 해 보고, 빨래도 밖에 널었다

1시간이 안되어 저녁 시간이 다가왔고, 일단 빨래를 걷으러 나가 보니 다 얼어 있었다

해가 진 진주의 저녁은 영하로 떨어진다는 걸 다시 체감하게 된 순간이다


동기들과 사회 소식에 대해 이야기 하던 중, 

태극기 휘날리며 라는 영화에 대해 알게 되었다 원래는 5시간짜리 영화인데,

러닝타임 때문에 3시간으로 줄인 영화라고 했고, 실미도의 10배는 재밌다고 했다

어떤 영화일까 궁금했고, 한국 전쟁을 다뤘다고 하니 그 궁금증은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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