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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이야기 24] 5주차- 행군 (2)

공군 이야기 (A-604기)

by G-Kyu 2019.06.2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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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식사를 끝내고, 조교의 인솔 하에 군장과 총을 챙긴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진주의 3월은 20년 남짓 살아오면서 가장 따뜻한 봄을 느끼고 있음과 동시에 추운 마음으로 지내는 묘한 기분이었다 가장 따뜻한 봄인데, 가장 추운 마음이라니 냉탕과 온탕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생각해 보면, 조금 춥더라도 깔깔이(야전상의 내피)는 입지 말라고 권했던 것 같다 행군하면 땀이 날 것이고, 땀이 식으면 감기에 걸리기 쉽기 때문에 옷차림을 가볍게 했어야 했다

그때 기억을 더듬어 보면, 오전 행군은 약 56km 정도 거리였던 것 같다 남은 산악 행군은 교육사 근처의 월아산이라는 곳까지 갔다가 내려오는 것인데, 오후 1시 출발하여 부대에 다시 오려면, 18km 행군 수준은 아니었던 것 같다

행군을 하며, 차량이 올 때는 "전달 전달 뒤로 전달, 전방에 차량" 이렇게 뒤의 동기에게 알리는 걸 알려 줬지만, 실제로는 조교들이 중간에 서서 "좌로 밀착" "우로 밀착"을 외치며, 차량이 올 때 안전을 위해 외치곤 했다

산을 향해 걸어 가는데, 소풍 온 것처럼 잡담을 할 수도 없고 그저 묵묵히 앞을 보고 어떨 땐 땅을 보고 걸어갈 뿐이었다 부러웠던 것은 이제 막 새순이 돋아나는 나무가 보이는데, 도로를 따라 승용차를 타고 가는 커플을 봤을 때다 우리는 군장 메고, 국도를 따라 걸어서 산을 향해 올라가는데, 상춘객의 모습으로 차량을 타고 가는 모습을 보자니 군 입대 후 차량을 타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음과 동시에 저 자유로운 모습과 비교가 되었다

추후, 특기 학교를 가게 되면 이동할 때 특기 학교에 따라서 차량을 타고 이동하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받은 특기는 차량을 타고 이동할만한 거리가 없었다 애매하게 멀어서 걸어다녀야 했다 실제로 차를 탈 수 있었던 것은 특기 학교에서 교육을 마치고, 자대 배치받을 때 가능했다

국도를 따라 올라가다 어느 순간 산길로 갔다 군대 영화처럼, 격하지는 않았지만 산악회에서 온 것처럼 화기애애하진 않았다 목적지에 다다르자 조교와 단체 사진을 찍는 시간이 주어졌다 몰골이 말이 아니지만, 20대 초반 가장 젊었을 오늘을 사진에 담았다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그 당시 함께 했던 동기들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 사진에 담겨 있다 별명과 이름을 부르며, 같은 시간을 함께 했던 동기들이다

산에 온 기념으로 뭔가 가져가면 좋겠다 생각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대나무만 보였다 대나무 이파리 하나를 따서 가지고 온 후, 수양록에 줄곳 보관했었다

나중에 색이 바래서 갈색이 되었지만, 훈련소의 추억이 담긴 대나무 잎이었다

이제 다시 부대로 가야 한다 화생방, 유격훈련을 위해 산 중턱에 올라간 적은 있지만, 오늘만큼 높은 곳은 아니었던 것 같다 경치를 둘러보며, 감상에 젖기 보다는 빨리 내려가서 쉬는 게 더 이득이라는 생각이고 전역하면 진주에 오고, 월아산도 와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는 지금보다 나이는 들었을지라도 자유가 있는 상태이기에 주변 풍경을 둘러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였다

어딘가에 기록 해 두지 않아서 어디로 복귀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정문을 통해 오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소풍 같기도 하고, 산악회 등산 같기도 했지만 엄연한 행군이었다 이제 제법 익숙해진 내무실과 훈련소 생활과 풍경 그리고 동기들과 이별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종평 발표

무엇이든 열매를 맺지 않으면, 그 동안의 노력은 헛수고가 된다 6주 전만 해도 사회인으로서 20대 초반의 모습과 한창 멋 내고,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아가 보려 했던 남자들이 같은 날 입대하고, 모두 똑같은 모습을 한 채로 군사 훈련을 받았다

시험의 스트레스와 자대 걱정, 건강, 가족, 애인, 미래 등 훈련병의 숫자만큼 걱정도 다양했을 것이지만, 여길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은 모두 동일했을 것이다

티비도 못 보고, 그렇다고 자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환경에 적응했으니 살아가고, 앞으로 올 휴가를 바라보며 희망을 가지고 지냈던 것이지 이 곳이 좋아서, 이런 생활을 줄곧 하고 싶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저 군생활을 해야 한다면, 이런 식으로라도 하면 할만 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나눴지만 여러모로 불편하고 힘든 훈련병 시간이었다 선진 군대라고 하고, 세상 좋아졌다고 하지만 결국 군대다

종합 평가, 일명 종평을 하고, 계급장도 받고, 정들었던 동기들과도 이별을 해야 한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기억은 온전치 않고, 드문드문 남아있을 뿐이다

종평은 모든 훈련병이 다 하는 것은 아니고, 파트별로 선보였다 태권도 1장, 화생방, 총검술, 제식 등 맡은 부분만 해 내면 되었다 이미 평가는 끝났고, 교육 사령부 단장을 비롯한 장교들에게 우리가 이렇게 배웠고, 우리가 이렇게 가르쳤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빛나는 이등병 계급장

공군의 계급장 색깔은 파랑색이다 민간인일 때는 계급장 색깔에 관심도 없었고, 그저 군인의 계급 정도만 보며, 이병, 일병, 상병, 병장을 구분할 뿐이었다

왜 이등병은 작대기 한개고, 일병은 작대기가 두 개인가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었다 군대에서 소외감을 느끼지 말라고 제일 졸병을 이등병이라고 불렀다 라는 이야기 미군 계급을 번역하는데, 실수해서 일병이 제일 졸병인데, 이등병보다 높게 번역했다는 이야기

기사를 찾아 보니, 미국의 졸병 (우리나라의 이등병)의 계급은 Private이고, 우리나라 일병은 Private First Class라고 한다

즉, Private 중 최고라는 뜻으로 First를 붙였고, 그 중 제일 나은 군인이라는 뜻을 가진다고 한다 일등 병사라는 뜻으로 일병 그런 의미로 보면, Private는 이등병으로써, 지금은 이등이지만 곧 일등이 될 것이라는 뜻에서 이등병이라고 한다

또 이야기는 일본 군대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둘 다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6주간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었고, 그 결과물로 이등병 계급장을 받았다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훈련병 대표가 단상에서 계급장을 수여받고, 다른 훈련병들은 조교가 스테이플러로 왼쪽 가슴에 계급장을 달아 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남은 계급장은 내무실로 돌아와 기본적으로 손바로크 했다

오바로크 : 바느질을 뜻하는데, overlock machine 에서 파생된 단어라고 한다 휘갑치기 재봉틀 이름에서 파생된 단어

재봉틀로 계급장을 군복에 바느질 할 때 쓰는 단어인데, 손으로 바느질을 하니 손 바로크라고 신조어를 만들어 쓰곤 했다 계급도 없는 훈련병에서 이제 이등병님이 된 것이다 2년 4개월 (28개월) 군 생활을 해야 하고,

이등병 5개월, 이병 6개월, 상병 8개월, 병장9개월을 해야 집에 갈 수 있다 계급으로 보면, 한 없이 낮은 이등병이지만 계급도 없는 훈련병보다는 낫고, 자율도가 조금은 올라간다 군대는 계급이고, 짬밥이다 먼저 온 놈이 장땡이다 민간인 일 때는 이등병은 계급도 아니었지만, 훈련병의 입장에서 이등병은 뿌듯하고, 무엇인가 결과를 얻은 것 같은 마음이 생긴다

그리고 훈련소 생활 6주도 군 복무 기간에 포함이 되고, 이등병 기간에도 포함이 된다 그러므로 사실상 이등병의 계급은 주어지지만, 아직 계급장을 수여 받지 못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받은 계급장을 한 손에 모아서 들어 봐도 그 무게는 느껴지지 않을만큼 가벼운데, 계급장이 주는 무게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계급장을 받으니, 곧 휴가를 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들고, 그 동안 힙합 하는 사람들처럼 모자챙을 구부릴 수 없었는데, 모자챙도 구부려 보고, 계급장도 붙여 본다

이제 수료를 했으니, 지금을 마무리 하고 새로운 곳으로 떠날 채비를 해야 했다 그동안 모든 내무 실원들과 친해진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함께 했던 기억들이 떠 오른다

목욕을 해야 하는데, 단체로 10분만에 다 했어야 했던 일, 군입대 전이었다면 지금도 잠을 자고 있었을 새벽 시간의 기상, 불침번 등 다양한 기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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