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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이야기 (A-604기)

[공군 이야기 30 ] 첫 CP 근무

by G-Kyu 2020.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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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4일 목요일 날씨 : 추움+맑음 

 

날짜는 3월이지만, 체감하는 느낌은 1~2월이다

게다가 군대에 있으니, 몸과 마음이 더 춥게 느껴진다

사회에 있었다면, 바람막이를 입고 다니며

다가오는 봄에 대한 설렘이 있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내복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다

사회에선 내복은 쳐다도 안 봤는데,

내복은 생존에 필요한 옷이었다

 

말로만 듣던 CP근무를 서게 되는 날이다

새벽 3시 20분에 일어나서,

옷 입고, 장비 챙기고, 보고하고, 상하번을 하러 출발했다

이 날의 암구호는 카운터 / 펀치 였다

누군가와 마주하여, 이 암구호를 주고받을 일은

거의 없지만, 어려운 암구호도 아니니 

머릿속에 기억 해 두었다 

 

실제 근무 시간은 새벽 4시부터 5시 20분까지 근무를 선다

새벽 시간은 정말 추웠다

남쪽이 이 정도면, 전방은 어떨까?

 

그리고 군부대는 도시에 비해 밤이 더 어둡다

주변에 건물이 없고, 부대 내의 안보를 위해서인지

조명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기억나는 CP 근무지는 2군데였다

그리고 2인 1조로 근무했던 것 같다

학과장과 F16 실습장

 

학과장은 일과 중, 학과 공부를 배우는 곳이고

실습장은 말 그대로 실습을 하는 곳이다

항공 정비 특기를 받은 교육생이 

실제로 비행기를 보며, 실습해 보는 곳이다

 

F16 학과장 2층에는 전화기가 있었다

몇몇 동기들은 근무를 서다가 

이곳에서 전화를 하곤 했다

 

이곳에서 전화를 하면, 도청되어서

누가 전화했는지 부대에서 안다는 이야기

전화하다 걸리면, 퇴교된다는 경고

 

혹은 CP 근무를 매일 서야 한다는 이야기 

조교에게 감점 표를 뺏겨서 원하는 자대에

갈 수 없다는 이야기 등등

 

하여튼 이곳에서 받을 수 있는 불이익은 

모두 받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새벽 시간에 부대 내에서

교육생들이 전화하는 걸 도청할까 하는 생각

 

그리고 조교들이 새벽에 나와서

급습해서 전화하는 걸 잡을까 하는 생각이

교육생들을 전화로 유혹했다

 

전화를 한다고 뭔가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편지로만 소통할 수 있는 훈련소에서

애인, 가족 등과 실시간으로 통화한다는 건

큰 장점이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밤의 군대는 어두워도

칠흑같이 어두운 곳이다

F16 학과장에서 전화를 하던 동기가

귀신인지, 뭔가를 봤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 두려움보다 전화를 한다는 기쁨이 커서,

애인이 있는 동기들은 전화를 하는 모험을 했었다

 

내가 근무를 했던 학과장에 전화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마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화할 곳도 없었고, F16 학과장처럼

외진 곳이 아니므로 누군가에게 걸리기라도 하면,

온갖 불이익을 당한다고 생각하니,

전화기를 찾고자 하는 마음도 없었다

 

어두운 곳에 달빛만이 근무지를 밝혀 주는 시간

아주 느린 걸음으로 학과실 건물을 돌았다

시간을 보니 10분쯤 걸렸다

 

이대로 10바퀴를 돈다면,

시간이 금방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계산으로 가능한 것이 실천으로 하면,

그렇게 쉽게 되지 않았다

 

한 바퀴 돌았으니, 코스가 익숙 해 지고,

중간중간 시간을 보게 되고

무엇보다 어제 수진을 갔다 올 만큼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밖에서 이러고 있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날은 춥고, 감기약을 먹어서, 

몸은 늘어지고, 추운 밤하늘 유난히 밝은

달빛을 보며, 감성과 짜증 사이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CP 근무를 마치고 내무실로 돌아오는 길

사슴 한 마리가 후다닥 어디론가 뛰어갔다

 

CP 근무를 했다고 해서, 돌아오는 혜택은 없다

남들보다 더 쉬게 해 준다던지,

잠을 자게 해 준다던지 하는 일은 없다

 

다른 동기들보다 3시간은

일찍 하루를 시작한 덕에

몸의 리듬이 깨지는 것 같았다

 

감기약을 먹어서 컨디션이 좋지 않은데,

새벽에 야외 근무를 하니,

하루가 48시간은 되는 것 같았다



점호

 

내무실에 오니 오전 5시 40분이었다

곧 기상을 할 것이고, 점호를 한다

 

잠깐 침상에 누웠는데, 몸이 늘어지는 게

이대로 푹 쉬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그러나 평소처럼 일과는 진행해야 했다

 

아침 점호 순서는

그 날 정해진 복장을 입고, 야외로 나온 뒤

내무실 별로 줄을 선다

 

우양우 -> 전방에 3초 함성 ->

끊어서 함성 3번 -> 기교가 1 절하고 끝

 

우양우를 왜 했는지 모르지만, 

좌측엔 산과 건물이 있으니

 

조금 더 트인 쪽으로 한 게 아닐까 생각된다

 

사회 소식

 

입 안도 헐었고, 컨디션도 안 좋지만

이 기분을 새롭게 해 주는 소식이 있다

 

사회 소식인데, 그중 어제 있었던

국가대표 축구 경기 소식이었다

 

미디어를 접할 수 없었으므로,

유일한 소식통은 학과를 가르치는

교관을 통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한국과 중국의 경기였는데,

한국이 1:0으로 겨우 이겼다는 소식이다

 

중국의 축구 수준이 많이 올라가서,

다음에 축구를 한다면 한국이 질지도 

모른다는 평가와 함께 

 

최성국 선수가 중앙 하프라인부터

35M 드리블을 한 뒤, 조재진 선수한테

패스를 해서, 골을 넣었다는 자세한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었다

 

서울은 영하 6도라는 소식도 함께 말이다

두 달여 남짓 수도권을 떠나왔는데,

날씨 소식 듣는 것만으로도 반가움이 생겼다

 

사회에서 들으면 별 일 아닌 일로

생각하며 넘어가겠지만,


군대에 있어도 사회는 사회대로

돌아간다는 생각과 함께

새로운 소식을 접했다는 생각이

별 것 아닌 뉴스에도 기분을 새롭게

만들어 주었다

 

포스터와 표어

 

군대도 사회처럼 승진이 절대적이다

하나라도 더 높은 계급이

그 사람을 결정하는 것이다

 

교관들은 군인이기도 하지만,

크게 보면 직업이 군인이다

 

그래서 계급을 올리기 위해

진급 시험도 봐야 하고,

점수도 관리해야 하는데

 

예외적으로 특진을 받을 수 있는 경우가 있다

그중 하나는 대통령상을 받는 것이다

 

이 때는 환경에 관한 표어, 포스터를

잘 그리거나 지어서 1등인

대통령상을 받으면, 특진이 된다고 했다

 

1,2 번째 열에 앉은 교육생에게는 표어

3,4 번째에 앉은 교육생에게는 포스터를

그리도록 했다

 

많은 시간을 소비하진 않았지만,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받는다는

옛 속담이 생각이 났다

 

추후 교관의 소식을 들었을 때는

계급의 변화가 없는 걸로 봐서,

상을 수상하진 못한 것 같았다



전기수가 남긴 것

 

자신들이 지나 온 길을 누군가가

다시 지나간다는 걸 알 때,

 

먼저 간 사람은 뒷사람에게 

메시지를 남기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 보면,

다음 여행객을 위해 무엇인가

남겨 두고, 떠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훈련소에서도 위와 같은 문화가 있었다

얼굴은 본 적 없지만, 

다음 기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은 쪽지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기교에서는 지난 기수 때,

T/O가 어디에 몇 명 있었는지를 적어 둔 쪽지가

기억에 남는 지난 기수의 흔적이다

 

그중 또 하나는 우표다

학과장 백에 편지를 넣어 두었는데,

봉투는 사제 봉투, 우표 190원짜리 3개를 붙여서

누군가에게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였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편지가 목적지에

도착하도록 우표를 사용한 것이다

 

군대에서 편지 보낼 때,

우표 없이도 보낼 수 있다

 

군사우편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가면

편지가 늦게 도착한다는 생각에

 

훈련병들이나 교육생들은

미리 사회에서 사 온 우표를 붙이면,

좀 더 빠르게 도착한다는 마음으로

우표를 붙이곤 했다

 

당시 봉투 안에 편지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당시 우표만 떼어서,

언젠가는 붙여야겠다는 생각에 우표만 떼어서

따로 보관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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