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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이야기 (A-604기)

[공군 이야기 16] 훈련소 4주차 - 화생방 숙달 훈련

by G-Kyu 2018.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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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체험 , 화생방 가스실


2004년 2월 17일 화요일 날씨 : 맑음


훈련소 최고 난이도라고 이야기 하는 화생방 숙달훈련

이게 숙달이 되겠느냐마는, 짧은 시간 안에 이러다 가는 구나 생각이 드는 훈련이다


재해 현장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과 유사하다 라는 생각이 든다


가스 자체는 죽을 것 같지만 죽지 않아서 문제인 가스다

오전엔 뭘 했는지 기억은 안난다


그러나 확실한 건 놀진 않았다는 것이다

점심 식사 때, 조교는 너무 많이 먹지 말라는 이야기를 할 뿐이었다


많이 먹어서 토하면 치우기 곤란하니까 

가스실은 각종 에피소드가 있다


가스실에서 방독면을 벗는데, 눈물, 침 , 콧물 다 난다

이 때, 침이 흘러서 땅바닥에 닿을 정도로 길게 늘어진다


입 벌리고 침이 흐르면 그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좀 과장한 이야기겠지만, 이 흐르는 침이 땅에 닿는다


그런데 다시 들이 마실 때, 그 침이 다시 올라 와 입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그걸 본 동기가 더러워서 토하고, 토한 걸 본 동기가 또 토하면서

아수라장이 된다는 이야기다 


나중에 들어 가 보니, 그걸 자세히 볼만큼 시간과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그리고 침이 그렇게 땅 바닥까지 흐를 확률은 적어 보였다


그만큼 난리나는 곳이라는 걸 이야기 하는 듯 했다


식당에 풍기는 가스 냄새


우리 소대는 점심을 먹고, 화생방 훈련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 전에 오전에 이미 화생방 훈련을 마친 소대가 들어오는데, 

식당에 가스 냄새가 진동을 했다


식당에서 떠들 수 없지만, 모습을 보아하니 큰 일을 치루고 

의기양양한 모습이었다


따가운 가스 냄새가 지금까지 나는 걸 보면, 가스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것 같다

즉, 화생방 훈련을 한지 얼마 안 된 느낌이었다


예방 주사를 맞을 때, 먼저 맞고 나온 사람이 부러운 것처럼

이미 끝낸 훈련병들을 보며,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훈련병이 훈련병을 부러워하다니, 아이러니하다

화생방장은 일명 빨간집으로 불렸다


건물이 빨간색으로 되어있으니, 빨간집이었다

별다른 컬러를 보기 어려운 훈련소에서 빨간색은 확실히 튀는 색이다


게다가 위치는 산 중턱에 있다

가스 냄새 때문에 좀 외진 곳에 지은 듯 했다


덕분에 가는 길은 험난했다


단독 군장으로 화생방


훈련소는 뛰거나 걷거나 둘 중 하나다

단독 군장을 하고 화생방 훈련소까지 가는데,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듯 했다


방독면 착용법을 알려 주고, 앞사람 어깨에 손을 올린채로 줄줄이

화생방 가스실로 들어가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우리 소대는 2번째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어찌 보면 다행이다 싶었다


들어가기 싫지만, 들어가야 하고 어차피 해야 하는 훈련이라면

빨리 하고 나오는게 도움이 되니 말이다


화생방 훈련 전, 군복 바지에 휴지를 넣어가고

가스실에서 나오고, 얼굴 정리 하는데 도움 된다고 들었다


그런데 가스는 바람에 날리는게 제일 좋다

비비면 더 따가운 가스다 


아예 휴지가 없는 것 보다는 낫겠지만,

막상 있다고 해도 얼굴에 직접 뭔가 대면 더 따가우니, 

조심해야 한다


가스실에 들어가기 전, 별 생각을 다 해봤다

최대한 숨을 참아 볼까, 버틸 때까지 버티자


가스는 들이 마시는 순간 지옥의 맛을 느끼게 되고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다






가스실로 입장


앞 소대는 가스실을 나와 켁켁 거리고 있고,

이제 우리 소대가 들어가야 할 차례다


방독면을 최대한 밀착하고, 머리 끈을 최대한 조였다

이 정도면 가스가 들어오지 않겠지 했다


이미 가스를 피워 놓아 희뿌연 연기가 실내를 가득 채웠다

조교는 방독면을 쓴 채로, 훈련병이 모두 들어오길 기다리고 서 있었다


그런데 방독면이 허접한지 숨을 쉬는데 매운 공기가 조금씩 들어오고 있었다

나보다 더 심한 동기 몇몇은 아예 기침을 하고 있었다


방독면에 가스가 새는 것이다

어차피 벗어야 하고, 실제 상황이 아니므로 그렇다 치지만


나보다 후진 방독면을 보급 받거나, 제대로 착용하지 않는 동기들은

남보다 좀 더 일찍 매운 맛을 보고 있는 중 이었다


2열로 오와열을 맞춘 후, 조교를 정면으로 바라 보았다

하라는대로 빨리 해야 이 곳을 벗어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조교가 방독면을 벗으라는 명령을 했고,

훈련병들은 벗기 싫은 방독면을 억지로 벗어야 했다


하이바 (방탄 헬멧)를 벗고, 방독면을 제거 하고, 다시 방독면을 접어

방독면 가방에 넣으니 숨을 참을 수 없었다


가스는 기관지와 얼굴로 밀려 들어 왔고, 연신 기침을 하고,

얼굴이 따가움을 느꼈다


헛구역질이 나고, 트림을 하면 좀 나을 것 같은데

트림은 잘 나오지 않은 그런 상황


분명 몸에 해롭지 않다고 했는데 , 뭔가 잘못된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실수로 약을 잘못 탄거 아닌가


다리에 힘이 빠지고 어깨 동무를 한 동기들에게 매달려 있다 시피 했다

이 당시, 대구 지하철 화재 사건이 사회적으로 이슈였는데


비교 할 상황은 아니지만 그 당시 상황도 이와 같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군가를 2곡 정도 부르고 나서야 탈출 할 수 있었다


한 소절도 못 부를 거 같은데 어찌어찌 다들 부르는 걸 보면,

하면 된다가 이런 것인가 생각이 들었다


5분여 머물렀지만, 이렇게 긴 5분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열리는 문이 새삼 감사했고, 햇빛과 공기가 이렇게 좋은 것인가 깨닫는 시간이다


지금도 수 많은 대한민국의 젊은 남성들이 가스실 체험을 할 텐데,

군대 아니면 겪을 수 없는 체험이니, 그냥 담담히 받아들이는게 좋다


두려워할 것도 없고, 쫄 것도 없는 곳이다

공군 훈련 중 가장 빡센 훈련이 화생방 훈련이긴 하다


자대 와서도 또 가스실에 들어갔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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