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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이야기 (A-604기)

[공군 이야기 3] 입대 (2) & 군대의 첫 식사

by G-Kyu 2018.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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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 입영


셔틀 버스가 왔고, 이제 언제 이곳의 풍경을 볼 수 있을지 모르기에

창 밖의 풍경을 눈에 담아두려 했다


비행기 표도 편도였는데, 이 길도 편도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입소 후, 5일 동안 신체검사를 비롯해 각 종 검사 후


귀가 조치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다고 면제가 아니므로

이왕 온 군대이니, 탈락 없이 입대하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버스를 타고 얼마가 흘렀을까?

공군에 입대했던 친구들의 말대로 연병장이 보이고,


미리 도착 해 있는 사람들이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어차피 같이 온 사람도 없으니, 그 틈에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지켜 봤다


아직까진 눈물 바다의 풍경이 연출되지 않았지만,

입대하는 사람의 마음을 공감하는 가족들


아직 다 마시지 못한 음료수를 손에 들고 있는 장병

이제 곧 있으면, 통제된 군대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걸 체감하지 못한 예비 훈련병들은 음료수 하나의 절박함을 알리 없었다

억지로라도 다 마셨어야 한다는 걸 깨닫는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전에는 돌핀 전자 시계 많이 가지고 갔다하고,

돈 좀 있으면, G-Shock 시계 차던 시대였다


간혹 손목에 진동이 오는 전자 시계도 있었는데,

이 때까진 듣도 보도 못했었다 (추후, 내무실에서 보긴 했다)


교육사는 오후 2시가 다가오자, 입대 장병들은 연병장으로 모이라 한다

(진주 공군 교육 사령부를 줄여서 교육사라고 한다)


이제서야 이별을 체감하는 예비 장병들이 하나 둘씩 가족들과 이별을 한다

한국 전쟁은 이보다 더 참혹했겠지만, 마치 전쟁터에 가족을 보내는 마음으로

눈물 짓는 가족들과 그 눈물을 보고 눈물을 감추는 입대 장병들이 즐비했다


평소에 빡빡이로 다녔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입대 한다고 빡빡이 머리가 된 장병들을 보면

그 모습에 더 슬프게 느껴졌을 것이다


입영 행사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남쪽 지방은 같은 겨울이어도 따뜻하구나 라는 생각을 서서히 잊어 갈 때쯤


다 큰 남자들이 동시에 눈물을 흘리고,

다시는 못 볼 것 같은 마음으로 가족들도 그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집에서는 온갖 잔소리를 들었던 아들도

귀한 대접을 받았던 아들도


평소엔 과묵했던 아버지도

가릴 것 없이 모든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는 광경


카메라로 담아 낼 수 없는 슬픈 광경이 실제로 펼쳐진다

학교 조회처럼 정렬해서 연병장에 서 있는 장병


그 모습을 바라보는 가족들

단상 앞에서는 안심하라는 이야기를 하는 대대장인지...단장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연설(?)할 만한 계급의 담당자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귀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순서 중 공군 의장대가 들어온다

키 185cm이상만 가능하다는 의장대


키가 크니, 흔한 말로 간지나는 모습이다

총으로 보여 줄 수 있는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구령에 맞춰서 열심히 돌리고 던지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런데, 총을 하늘로 던졌는데 받을 때 떨어뜨린 병사가 있었다


가족들이 모여있던 곳에서 누군가가


"점마 x 됐다" 


라는 이야기를 크게 했다

민간인들이 보기엔 실수 할 수 있겠거니 할 수 있지만,


그걸 죽어라 연습했던 입장에선 혼나지 않을리가 없다

특히, 계급이 낮다면 더욱 깨지겠지





이제 군대 속으로...


연설이 끝나고, 각 종 행사가 끝나면

가족들과 이별을 할 시간이다


이 중 10% 정도는 1주일만에 집으로 돌아가겠지만

입영 장병 중 그게 자신이 되리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부모님께 대하여 경례"


이 구령과 함께 가족들이 있는 곳을 향해 거수 경례를 한다

그런데 경례의 ㄱ도 배우지 않았으니, 제대로 할 리가 없다


대충 손을 들어 얼굴 어딘가에 올림으로써,

거수 경례 비슷하게 흉내낸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순간이 찾아 온 것이다

앞으로 2년 4개월 동안은 민간인이 아닌 군인이기 때문이다


특히, 훈련병은 6주간의 훈련을 거치고

특기 교육을 다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는 기간까지

군복 이외에 다른 옷을 입을 수도 없는 군인이다


100일 만에 휴가를 나간다고 하는데,

100일이 짧은 시간 같지만 약 3달 정도다


공군이니 군생활 하면서, 아마 가장 긴 시간동안 

군대 내에 있는 시간일 것이다


자대가면 6주에 한번씩 (1달 반)마다 2박 3일 외출을 해서

집으로 갈 수 있다


물론, 기존 선임들이 있으니 타이밍을 맞춰야 하므로

첫 외출은 100일 휴가 귀영 후, 8주만에 나갈 수도 있고

어쩌면 그 이후에 나갈 수도 있다


이건 자대 가봐야 아는 것이므로, 중요한 건 지금이다


열 맞춰서 이동을 하고, 가족들도 눈물을 뒤로 한채

다시 볼 날을 기약하며, 이별을 한다


4중대 3소대


가족들과 이별을 한 후, 이제 지역별로 중대와 소대를 나눈다

친구들이 준 팁에 의하면, 단상을 바라 봤을 때


제일 오른쪽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왼쪽은 1중대이므로, 뭘 해도 처음이니 좋을게 없다고 했다


벌써 10년 이상 흘렀기 때문에 정확한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역별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1중대 인원이 차면 2중대로 넘기고..

아직 입대하기 전이라면 이게 무슨 소린가 할 것이다


군대에서 무리를 나누는 방법이다

소대 (약 20명)이 4개가 모여서 중대가 된다


고등학교로 보자면, 

1반부터 4반까지 하나의 팀이 된다고 보면 된다


소대 < 중대 < 대대 < 연대 순으로 단위가 커진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단상에서 지역별로 사람들을 부른다


서울에서 오신 분 이 쪽으로 오세요

그럼 몇명이 그 쪽으로 간다


이를테면, 20명이 다 차면 

다른 지역을 부른다


그런 방식으로 하나의 중대를 만든다

최대한 버티고 버티다가 4중대를 만들 차례에 움직였다


최종 받은 중대는 4중대 3소대였다

임시였던 것인지, 최종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지만


다른 중대와 소대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대로 훈련병 생활을 했던 것 같다


줄 서기 팁


만약 친구와 함께 같은 소대에 편성이 되고 싶다면

줄을 설 때, 앞뒤로 서야 확률이 높다


좌우로 친구와 나란히 서게 되면

둘 중 한명이 뒤로 밀리게 된다


이유는 앞에서 줄을 정리하면서,

앉아 번호를 하는데, 그렇게 되다 보면


자연히 줄이 어긋나게 된다

그러므로 앞뒤로 줄을 서면 그렇게 짤릴 확률을 줄일 수 있다


그리고 줄을 설 때,


   (앞)


1 2 3 4

5 6 7 8


이렇게 4열 종대로 서게 된다


1,2,5,6 으로 하나의 소대로 편성 되고

3,4,7,8 이 하나의 소대로 편성 된다


그러므로 같은 소대에 편성이 되고 싶다면

참고 해 두면 좋다


2004년 당시엔 이렇게 줄을 세우고, 편성을 했다


위의 줄서기 팁은 군대에서 줄을 설 때,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이므로 참고 하자


마지막 일정은 인성 검사


입소 후, 지역 별로 분류를 한 뒤 입소 번호를 받는다

그리고 저녁을 먹기 전, 인성 검사를 한다


인성 검사를 통해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가름하는 것인데, 한마디로 상식적인 답변을 쓰면

인성 검사에서 떨어질 일은 없다 


군대에서 첫 식사


입대를 하고 곧바로 굴리고 그러진 않는다

아직까지는 민간인 신분이다


중고등학생 시절처럼 수련회를 온 것도 아니다

그 때처럼 길어야 3박 4일 있다가 집으로 가는 것도 아니다


합법적으로 집에 가려면, 휴가증이 있어야 한다

앞을 생각하면 깜깜하지만, 희망적인 것은 오늘부터 입대로 계산하므로

2년 4개월의 복무 기간 중 하루를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로 갔는지는 정확히 뭘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저녁 때가 다가오자 점심도 되기 전에 먹은 햄버거가 소화 됐는지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사회였으면, 당장 뭔갈 찾아 먹었겠지만 여긴 군대이므로

다 함께 정해진 시간에 움직여야 했다


개인 행동도 못하고, 조교의 통솔하에 단체로 움직이는 생활

지금은 어색하지만, 곧 익숙 해 져야 할 일이었다


겨울이다 보니, 해가 금방 졌다

배도 고프고, 타지에 왔으니 더 우울한 마음이 컸다


공군은 학과 성정과 훈련 성적을 기반으로 등수를 낸 후,

높은 등수를 한 사람부터 자대 배치 시, 우선권이 주어진다


그렇게 자신의 집과 가까운 자대로 갈 수 있는 시스템이다

진주는 경상도이므로, 경상도가 연고지인 사람들이 지원을 한다


간혹, 타지역이지만 조교가 하고 싶어서 지원하기도 할테지만

대부분 진주와 가까운 곳을 연고로 하는 사람들이 조교로 있다


그래서인지 사투리 억양으로 이야기 하는 조교들의 말투는

여기가 집과 훨씬 떨어진 곳이란 걸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다


어둑어둑 해 지는 저녁,

군대 식당에 오니 앞으로 밀착이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그 이야기는 앞 사람과 간격을 최대한 좁히라는 이야기다

군 입대 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 났다


남기면 안된다


그런데, 괜히 억지로 먹었다가 탈이 날 바에는 남기는게 낫다

실제로 남긴다고 뭐라고 하지는 않는다


약 1,000여명이 되는 훈련병들이 2004년 1월 26일의 저녁을

군대에서 짬밥으로 먹게 되는 순간이다


기억에 나는 것은 밥이 설 익는 것도 있었다는 것이다

타 군보다는 낫다라고 하는데, 그래도 사회 보다는 구렸다


후에 조교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되새겨 보면

비행단으로 자대 배치를 받으면, 여기보다 훨씬 맛있는 밥이라고 했다

비행단을 가 본적이 있는데, 밥이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식사 예절


밥을 퍼 왔다고 해서, 혼자 먹으면 안된다

순서대로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한 테이블에 어느 정도 숫자가 차면,

제일 바깥 쪽에 있는 사람이 일어나서 식사 시작을 알리는 절차를 실행한다


1. 차렷 

2. 탈모

3. 의자 밀착

4. 식판 밀착

5. 힘찬 구호와 함께 식사시작


그 앞에 있는 문구를 읽어야 한다


"국민의 정성 어린 이 음식을 감사히 먹겠습니다! 식사 시작!"


이게 A4용지에 적힌 식사 구호였다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기억이 나는 걸 보면,

임팩트 있는 구호였나 보다


우렁차게 외쳤어야 하므로, 그걸 읽는 자리에 앉지 않길 바랐다


1 2 3 4 5

----------

| ★      |

----------

6 7 8 9 10


설명하자면, 별표에 식사 구호가 적혀 있고

10번까지 모두 앉으면 1번인지 6번인지 그 쪽에 앉은 사람이 일어나서

구호를 외치는 구조다


이 구호를 선창하고, 남은 훈련병들이 따라 외치고

식사 시작을 외치면 같이 외쳤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식사를 시작 한다


이 때 또 다른 예절이 있다


왼손 파지 라는 말이다


즉, 식판을 바라 봤을 때 왼손을 식탁에 올린다

그리고 하이 파이브 할 때처럼 모든 손가락을 붙인 후, 엄지만 따로 벌린다


그렇게 되면, 검지와 엄지가 ㄱ자 모양이 된다

이 모양 그대로 식판이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한다


잘 모르겠으면, 전역한 사람에게 물어 보거나

입대 해 보면 무슨 얘기인지 빠르게 알 수 있다


식사 분위기는 화기애애 하지 않다

아니 그럴 수도 없다


불과 몇시간전만해도, 가족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고

사회의 맑은 공기를 마시다가


어둑컴컴 해 진 군대의 저녁 시간에

낯선 식사 문화와 처음 보는 남자들 1,000여명 가까이에 둘러 싸여서 식사하니

기분이 좋겠느냐 말이다


식사가 끝나면 식판을 들고, 정해진 곳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남은 잔반을 버리게 된다


중요한 건 김치와 다른 반찬과 밥을 분리해서 버려야 한다

우스개 소리로 김치만 따로 모아서 다시 재활용 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한다


농장으로 짬밥을 보내게 되는데, 김치가 섞이면 염분으로 인해

동물이 탈이 날 수가 있어서 분리한다는 것이다


김치 재활용 루머는 훈련병들 사이에서 돌고 돌았던 이슈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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